前 미 정보요원 “전두환, 계엄군 발포 직전 광주 내려와 ‘사살명령’”

前 미 정보요원 “전두환, 계엄군 발포 직전 광주 내려와 ‘사살명령’”

기사승인 2019-05-13 16:33:06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 직전 전두환씨가 광주를 방문해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주한미군 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씨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이 지난 1980년 5월21일 K57비행장에 와서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 이재우 당시 505보안대장 등 74명과 회의를 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K57비행장은 제1전투비행단의 비행장을 뜻한다. 제1전투비행단은 광주광역시 광주공항에 위치해 있다. 즉, 전씨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를 방문했다는 뜻이다. 또한 80년 5월21일은 계엄군이 시민군을 향해 발포를 시작했던 날이다. 김씨는 당시 제1전투비행단에 주둔한 주한미군 501여단에서 근무했던 유일한 한국인 정보요원이었다.  

김씨는 “전두환의 방문 목적은 사살명령이었다고 생각된다”며 “발포명령과 사살명령은 완전히 다르다. 발포는 상대방이 총격을 가했을 때 방어차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으로 근무했다가 지난 88년 ‘광주청문회’에서 양심선언을 한 허장환씨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포는 초병한테만 해당되는 말이다. 전씨는 절대 발포 명령권자가 아닌 사격 명령권자였다”면서 “그 사격을 제가 직접 목도했다. ‘앉아쏴 자세’에서의 사격은 절대 자위적인 것이 아니다. 전씨가 사살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북한군 침투설 등도 전씨에 의해 날조됐다는 언급이 나왔다. 김씨는 “600명의 특수군이 광주에 왔다는 주장은 미 정보망이 완전히 뚫렸다는 얘기인데, 당시 한반도에서는 두 대의 위성이 북한과 광주를 집중 정찰하고 있었다”며 “북한에서 600명이 미국의 첨단 감시망을 피해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민 행세를 하던 사복군인들이 실존했다. 제가 첩보를 입수하고 찾아가 눈으로 확인한 후 30~40명가량으로 보고했다”며 “이들을 광주로 보낸 것은 전두환의 보안사령부였다. 이들이 선봉에 서서 방화와 총격, 장갑차 등의 탈취를 유도하거나 직접 벌였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시민을 폭도로 만들고 강경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보안사령부가 고도의 공작을 벌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일빌딩 헬기 사격도 실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허씨는 “(시민군이 있는) 도청을 진압하러 가는 과정에서 건물에 저격병이 있다는 첩보를 들었다”며 “헬기로 저격병을 저격병을 저격하는 작전을 구상했다. ‘호버링 스탠스’(헬기가 한 자리에 멈처 비행하는 것)에서 사격했다”고 전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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