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39년의 침묵…이제는 말해야 할 진실

[친절한 쿡기자] 39년의 침묵…이제는 말해야 할 진실

39년의 침묵…이제는 말해야 할 진실

기사승인 2019-05-17 07:10:00

“나는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법정에 선 아돌프 아이히만은 당당했습니다.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 중령으로 활동했습니다. 재판을 방청한 한나 아렌트는 그를 매우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했습니다. 광신도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단지 ‘성실하게’ 유대인 600만명에 대한 학살을 지휘했던 것입니다. 

개인으로서는 저지르기 힘든 범죄들이 집단 속에서는 쉽게 자행되고는 합니다. 집단 속의 개인은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죄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죠. 잘못된 명령을 내린 상부의 죄가 가장 크지만, 이를 따른 이들이 완전히 무고하다고는 할 수 있을까요. 학살을 지시한 상부와 이를 따른 군인들. 나치 독일뿐만 아니라 지난 1980년 광주에서도 이같은 비극이 있었습니다. 

당시 군 관계자 등이 명을 거역하면 자리 또는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실제로 상부의 명령을 거부, 시민을 지켰던 고(故) 안병하 전남도국장(현 전남경찰청장)과 고(故) 이준규 전남 목포경찰서장은 직위해제 되거나 파면됐습니다. 두 사람 모두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이들처럼 누군가 더 나서주었다면 무수한 희생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당시 해내지 못했던 일.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88년 열린 이른바 ‘광주 청문회’에서 군 관계자 대다수는 변명 및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공수부대 중사로 광주에 투입됐던 최영신씨가 최초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양심고백 했지만 동료들의 질타와 협박에 시달려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 관계자였던 김용장씨와 허장환씨 등이 다시 증언에 나섰습니다. 다만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용기 있는 관계자의 고백이 좀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실종된 이들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합니다. 가족들은 가묘를 지어 마음을 달랠 수 밖에 없습니다. 5·18 기념재단 등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사망자는 총 606명입니다. 이중 행방불명자는 65명에 달합니다. 광주교육청에 따르면 행방불명자 중 유아·청소년도 20명에 이릅니다. 

39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명확한 진실 규명이 필요합니다. 상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던 그 부채를 이제라도 씻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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