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죽어가는 환자 외면이 의사의 연구자 윤리?

[기자수첩] 죽어가는 환자 외면이 의사의 연구자 윤리?

기사승인 2019-05-27 03:00:00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췌장암 3기 환자는 “3기 진단은 사형선고였다”면서 여타 치료를 포기한 채 민간요법과 속설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노력은 해봐야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살고 싶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답을 내놨다. 며칠 전엔 기자의 개인번호로 전화가 와 임상시험이라도 무슨 방법이 없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또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커보였다. 더구나 살 수 있는, 적어도 남은 여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지켜만 봐야하는 상황에서의 답답함은 몇 자의 글로 전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오히려 그의 심정을 생생하게 전하지 못하는 기자의 부족함에 부끄러움마저 들었다.

그리고 환자들의 생명이 경각을 달리고 사라져 가는데도 의사와 의료기관, 정부가 자존심이나 규정, 업무범위를 따지며 외면하는 모습에 실망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기자는 절대적으로 제3자이고자 노력해야한다고 배웠고, 지키고자 노력했다. 그 때문인지 췌담도암 광역학치료(PDT)를 둘러싼 기사를 작성하는데 더 많은 인내와 분노조절이 필요했다.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1994년, 수단에서 굶주림에 쓰러진 소녀와 이를 지켜보는 독수리 사진으로 사진기자의 최고 영예인 ‘퓰리처상’을 받고도 ‘어린아이에게 물을 주어야 할 것인가, 사진을 먼저 찍어야 할 것인가’란 유언을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캐빈 카터의 고뇌가 떠오를 정도였다.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의사는 임상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 입장에서 자신의 연구결과가 특정 제약사의 주가에 큰 영향을 주고, 주가 상승에 이용되는 것은 연구자의 윤리에 비춰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다며 연구결과를 연구종료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발표하지 않고 있다.

세계적 명성을 가졌으며 해당 의사가 소속된 병원은 임상시험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부정적인 소문에도 의사가 사실을 밝히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입장만을 내놓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앞에선 바이오헬스산업을 육성하고, 아이디어를 산업화해야한다면서도 정작 임상시험 관리·감독 규정 등을 내세우며 생명을 살릴 유망기술을 사장시키는데 일조 중이다.

‘환자가 죽어간다’는 외침은 연구자 윤리를 이유로 내세우는 의사에겐 소음이었다. 의사를 병원이 통제하기 어렵다는 병원이나, ‘생명을 살릴 연구결과를 관리하고 육성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규정에 없어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는 대답으로 일관하는 정부에겐 내 일이 아니었다. 상식선에선 납득하기가 쉽지 않은 결정이고 행태다.

의사는 의료업을 시작하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이는 의사가 가져야할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이다. 해당 의사 또한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세 번째 다짐을 읊었을 것이다. 과연 그가 내세운 연구자 윤리가 의사라는 직을 수행함에 앞서 그가 외쳤던 선서에 앞서는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길 바란다.

적어도 연구자윤리 때문에 연구결과를 발표할 수 없다며 일련의 연구결과를 활용해 새로운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특허와 같은 자신의 이권을 챙기려는 행동이 사라져가는 환자의 생명을 외면한 결단의 이유는 아니길 빈다.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의료기관과 정부에게도 밝히진 않았지만 생존을 바라는 환자들의 바람보다 크고 앞서는 뜻이 있길 기대한다.

췌장암이나 담도암은 ‘암의 만성질환화’, ‘암의 정복’이란 표현이 익숙해진 현대의학으로도 아직 ‘죽음’에 가까운 악성 중의 악성 종양이다. 조기진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다 암을 발견해도 쓸 수 있는 치료제가 거의 없어 암을 제거하는 방법은 수술이 유일하다. 그마저도 췌장이나 담도, 담낭의 위치가 장기와 혈관으로 둘러싸여 수술도 쉽지 않다.

각종 보건의료통계에 따르면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췌담도암 환자의 10~20%에 불과하며, 치료를 받아도 완치로 판단하는 5년 생존율은 2018년 기준 췌장암 10%, 담도암 29%에 그친다. 방사선이나 항암 치료, 수술 등을 거쳐도 생존기간의 중간값은 5.5개월이며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한 이들은 1달도 채 살지 못한다. 부디 이들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으면 한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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