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반(反)화웨이’ 동맹에 한국의 동참을 요구하면서 국내 면세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편의 설 경우, 중국이 경제보복에 나서 ‘제2의 사드사태’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는 탓이다. 업계의 기대를 모았던 시진핑 국가주석의 6월 방한도 현재 무산된 상태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지난 16일(현지시간)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거래 제한 기업으로 지정했다. 이후 동맹국들에도 이 같은 방침을 전달하면서, 한국 정부 역시 ‘반(反)화웨이’ 참여를 요구받은 상황이다. 미국 편에 서서 화웨이 제재에 동참할 경우, 과거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중국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의존 중인 면세업계는 이를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은 이미 지난 2016년 이후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에 큰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사드 혹한기’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였다. 유커(단체관광객)는 한순간 종적을 감췄고, 매출은 끝없이 떨어졌다. 대신 ‘되팔이’ 상인인 따이공이 면세점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유커는 사라졌지만, 한국 물품의 수요는 여전해, 장사꾼인 따이공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국내 면세업계는 이 ‘따이공’ 덕분에 사드 혹한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관광은 뒷전이지만, 면세상품에 목마른 따이공 덕에 업계의 매출은 다시 치솟아만 갔다. 현재 면세점 고객의 70% 이상이 이 따이공으로 추정된다.
따이공은 면세점 입장에서 ‘계륵’ 같은 존재다. 싹쓸이 쇼핑으로 객단가가 높지만, 송객수수료라는 일종의 리베이트성 비용이 든다. 면세업계는 따이공 유치를 위해 송객수수료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매출이 높다 한들, 상당 부분 다시 수수료로 나가는 구조인 것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이유로 한화갤러리아가 면세사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런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업계에서는 ‘한한령’의 해소를 손꼽아 기다려왔다. 하지만 미·중 무역갈등이 ‘화웨이 사태’로 인해 본격화하기 시작하면서 기대가 우려로 바뀌고 있다.
당초 6월쯤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관측됐던 시 주석의 방한도 결국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중국 정부는 시 주석의 방한설과 취소설에 대해 모두 들어 본 적이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동맹 측에 서라'는 미국의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정부에 대한 중국의 압박으로 읽히는 부분이다. 중국이 따이공에 대한 규제 강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의 민족주의 성향의 환구시보는 지난 24일 “화웨이 설비 수입을 중단하면 한국 기업의 손실은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중국이 한국 기업에 보복조치를 취할 경우 손실은 눈더미처럼 커질 것”이라는 기사 실으며 보복을 경고하기도 했다. 언론 뿐 아니라 중국 학자들도 경고성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한령이 풀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는데, 현 상황에선 힘들어 보인다”면서 “아직까지 구체화된 것은 없지만, 중국이 화웨이 제재를 빌미로 따이공 규제 강화에 나선다면 큰 피해가 예상 된다”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사드 사태 당시에도, 유커는 줄었지만 따이공은 존재했다”라며 “중국 내에서 한국 물품에 대한 수요가 큰 이상, 중국 당국이 따이공 전체를 규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