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문화… 가상의 질병 만들기 멈춰야”

“게임은 문화… 가상의 질병 만들기 멈춰야”

기사승인 2019-06-10 11:46:59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게임이용장애’ 질병화 도입 움직임과 관련 “소모적 논쟁을 그만하자”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와 한국인디게임협회,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SG길드, 스마트폰게임개발자그룹 등은 9일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 등재를 수용하려는 보건복지부와 국내 중독정신의학계에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5개 단체는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연구들은 너무 낡은 인터넷 중독 진단 척도에 기반하고 있다”며 “게임질병코드의 섣부른 국내 도입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낡은 진단 척도’와 관련해서는 “게임 중독 논문들이 사용하는 중독 진단 척도가 20년 전 개발된 ‘인터넷 중독 진단 척도(IAT)를 사용하고 있다”며 “게임 행위와 중독 간 인과요인의 분석에 대한 의약학 연구 이외의 사회과학 연구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는 ‘게임은 좋은 것이지만 치료가 필요한 중독의 원인’이라는 중독정신의학계의 해괴한 논리에 반대한다”며 “게임은 건전한 놀이이자 영화나 TV, 인터넷 쇼핑, 레저 스포츠와 같은 취미‧여가 문화 중 하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제2, 제3의 게임질병코드’가 개인의 취미생활을 제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어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는 학계의 포괄적지지(컨센서스)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보건복지부와 중독정신의학계의 논리에 대한 우려를 피력했다.

WHO 총회 게임이용장애 관련 의사진행발언에서 게임산업 선도 국가로 꼽히는 미국, 한국, 일본 대표가 모두 ‘진단 기준에 대한 우려’와 ‘후속적인 추가 연구의 지속성’을 언급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보건복지부 관계자나 의학계 일부 학자들의 ‘(질병 코드 등재는) 만장일치로 통과돼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의결 사항’이라는 주장에 반박했다.

최근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 등재를 뒷받침하는 연구 근원지가 다름 아닌 한국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2013년 복지부 예산으로 개발된 ‘게임 중독 진단 척도 기준(IGUESS)’에 녹아 있는 게임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도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게임 중독 진단 척도로 삼는 자가문진으로 개발된 내용이 1998년의 Young이 개발한 인터넷중독 진단 척도 문항을 그대로 번안한 수준이며 평소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자가문진을 해도 ‘잠재적 위험군 혹은 고위험군’으로 나오는 비상식적인 결과는 이 도구를 개발한 중독정신 의학계 학자들의 게임에 대한 몰이해와 잘못된 선입견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심각한 오류를 가진 IGUESS와 IAT의 진단 기준을 기반으로 2014년 이후부터 진행된 수백 편에 달하는 게임 중독 연구 논문들의 연구비가 지난 수년간 250억이나 소요되는 정부 예산으로 집행됐다”고 꼬집었다.

국내 연구 논문의 편향성에도 일침을 가했다. 2013~2018년 전 세계적으로 SCOPUS(우수학술논문 인용지수) 등재된 671편의 게임 과몰입 관련 논문 중 한국, 중국, 대만은 91%가 게임 중독 혹은 게임 질병 코드 도입에 찬성하는 논문을 작성했지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권에서는 52%가 게임 중독이나 게임 질병 코드 도입에 부정적이거나 중립적인 논문을 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게임 과몰입과 관련된 전체 학술 논문 자료 중 한국, 중국의 자료가 전체 자료 중 35%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WHO 관리들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로부터 압력이 있다’는 인터뷰 내용과 맥락이 같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인터넷 게임 중독 관련 논문 수가 충분하다는 의학계 일부의 주장에도 ‘질적 개선’이 양적 확장보다 중요하다고 맞섰다.

성명에서는 “양적인 숫자만 앞세우는 것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학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며 “4000개 이상이라는 인터넷게임 중독 논문 중 단순 석사 학위 논문, 다른 연구의 인용 논문, 임상 현장이 아닌 단순 통계적 자료로 분석된 논문, 일반 집단에 대한 단순 예방적 논문, 이중 진단자 대상 임상 연구 논문, 게임이 아닌 인터넷 중독에 대한 논문 등 우수 학술지에 게재되지 못한 논문을 배제하면 그 수는 현격히 줄어든다”고 짚었다.

또한 “중독정신 의학계의 연구가 물질 중독에서 이뤄낸 성과를 행위 중독으로 어떻게 설득력있게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학계의 노력이 아직 부족하고, 전체 학자들 사이에서 과학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며, 관련 학계 전문가 모두의 동의를 얻을 만큼 확증적인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했다는 점은 명확한 사실”이라며 “불분명한 게임 중독 환자들을 양산하며 연구 자료를 축적하자는 중독정신의학계 일부 학자들의 의견은 의료 현장에서의 혼란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낭비를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의학계 사정에 따라 게임과 그 이용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더했다.

복지부 정신건강관련 예산이 1.5% 수준으로 해외 2.8%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짚으며 “재정적 결핍 이유로 게임 중독이라는 ‘가상의 질병’을 만드는 과잉 의료화가 시작되고 신규 의료 영역을 창출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음을 의심하고 있다”며 “게임이용장애가 수백만명에 달하는 미취학‧취학생들이 잠재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우리는 게임의 장르, 플랫폼, 이용 대상에 따라 다양한 게임플레이 패턴이 발생하고 그에 따른 이용 형태도 다양한 특성의 분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게임 분야의 전문가”라며 “중독정신 의학계가 게임중독을 규정하려면 우선 게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기반이 돼야한다. 그 어떤 논문에서도 게임 이용 패턴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2013년 이후 게임 중독이야말로 중독정신 의학계의 숙원 사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소모적인 논쟁을 그만 하려면 소모적인 주장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며 “용어조차 학계 내부에서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학계의 합의가 부족함을 반증하고 있다. 게임질병코드의 KCD 도입을 원한다면 충분한 연구 결과가 뒷받침돼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다 나은 게임’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내걸었다. “전체 국민 중 67%가 이용하고 있는 게임의 사회 공익적인 측면에 공감하고 있다”며 “게임업계가 스스로 건전하고 합리적인 게임 내 소비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부정적 인식 개선을 위해 제작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 십여년 간 게임질병코드 도입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온 중독정신 의학계의 일부 학자들은 WHO 총회의 결정이라는 거대한 권위 뒤편에 서서 자신들의 눈과 귀를 막은 채 그럴듯한 학술로 포장된 일방적이며 공허한 주장을 반복하는 것을 즉시 멈출 것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사회과학, 심리학 등 관련 학계 전문가들과 함께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학계의 포괄적 지지부터 이끌어내길 바란다. 지난 십여년 간 지속된 이 소모적인 논쟁이 부디 종식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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