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촉발된 ‘일본 불매운동’이 사흘째로 접어들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일본 여행 취소 ‘인증샷’이 올라오는 등 일본 자체를 불매하겠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한 청와대 국민청원 역시 5일 기준 3만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동조 의사를 밝히며 힘을 보태고 있지만, 정작 현실에서의 파급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일 오후 6시께 찾은 명동 유니클로. 여전히 손님들이 몰려 ‘일본 불매운동’ 시작 전과 특별히 다른 점은 감지되지 않았다. 북적이는 명동 시내에서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들까지 끊임없이 몰렸다. 기자임을 밝히지 않은 채, 매장 직원에게 “사람들이 많이 찾나”라고 슬쩍 물으니 “할인 행사로 고객이 몰릴 시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날 ‘일본 불매운동’은 직원들의 인식 밖 일인 듯했다.
사실 명동점은 외국인 비율이 높아, 불매운동이 본격화해도 큰 타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점을 감안, 서울 신촌과 홍대로 자리를 옮겼다.
유니클로 홍대점도 평상시와 다를 바 없긴 마찬가지였다. 최근 며칠간 ‘일본 불매운동’이 주요 포털 검색어에 오르며 이슈가 됐었나 싶을 정도로 평온했다. 옷을 고르고 있던 한 무리의 손님에게 “일본 불매운동을 아시냐”고 물으니, “유니클로가 일본 기업인가, 몰랐다. 내가 필요하면 쓰는 것”이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일본 불매운동’을 인지한 손님도 마주쳤지만 “'가격이 싸서', '거리가 가까워서', '이번만 구입'”이라는 답들이 돌아왔다.
유니클로와 함께 일본 불매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무인양품, ABC마트 매장 역시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인근 ABC마트에서 마주친 한 커플은 “이거 디자인 너무 잘 나왔다”라며 대화를 나눴다. 평소 상황과 마찬가지로 매장은 음악과 함께 활기찬 분위기였다. 직원들은 “사이즈 보고 가세요”라며 힘차게 외쳤다. 손님들의 지갑도 여러 차례 열리고 닫혔다. 건너편 타 브랜드 점주들도 이들 매장에 대해 “평소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신촌 인근의 무인양품 매장에서 마주친 한 중년 여성은 “제품이 잘 나오고 있어서 종종 들르고 있다”면서 “일본 불매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전 국민적인건 아닌 것 같다”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양국 갈등을 자극하는 감정적 ‘불매 운동’보다 이성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위안부 배지를 달고 있던 한 고등학생은 “무인양품에서 솜사탕과 펜 등을 주로 구입 한다”면서 “불매운동으로 일본에 피해를 입히겠다는 생각은 1차원적인 것 같다. 방탄소년단, 한류 등의 확산이 진짜 무서운 것 아니냐. 일본 불매운동 취지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경제와 정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이튿날인 5일 점심시간, 홍대의 유명 맛집으로 꼽히는 한 일본식 라멘집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기 시간만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밤이 되자 홍익대 부근의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에는 불이 켜지며 어김없이 손님들이 몰렸다. 한글 간판은 찾아보기 어렵고, 일본어로 된 간판이 즐비했다. 내부에는 박수와 웃음소리 흥겨움이 가득했다. 근처에서 만난 한 손님은 "이전부터 사람들이 많이 찾아 불야성으로 유명한 곳"이라며 "불매운동이다 뭐다 해도 똑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곳 근처 주점이 다 그렇다. 근데 이자까야 안 가는 것이 과연 일본 불매인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현재 상황만으론 일본 불매운동의 파급효과가 적다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일본이 추가적인 (경제보복성) 조치에 나설 경우, 전례 없던 범국민적 운동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매운동이 아직까진 해당 기업들의 매출에 반영될 정도로 영향력이 크진 않다고 본다”라면서도 “일본 언론에선 한국에 대한 추가 보복성 조치로 ‘비자 발급 제한’까지 거론하고 있는데, 가능성은 낮지만 현실화 될 경우 국내의 반일감정은 극에 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