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매운동 양상이 ‘NO 재팬’에서 ‘NO 아베’로 변화하고 있다.
이홍구·고건·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한승헌 전 감사원장, 장화익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속한 동아시아평화회의는 12일 오전 11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8·15 74주년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우리는 일본 국민이 레이와(令和) 시대를 평화의 시대로 열어가기를 열망한다고 믿는다”며 “아베 정부가 새 시대를 이웃 나라와 적대로 시작한다면 일본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며 세계를 크게 실망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책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이들은 “아베 정부가 주도하는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과 평화헌법 폐기 시도, 재무장 공언으로 동아시아 평화는 지금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한일평화와 동아시아평화를 위해 일본 정부는 평화헌법을 개정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 철회, 한일 정부의 직접 대화 즉각 재개 등으로 현재의 위기를 해결해나가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시민사회 원로들의 성명은 일본 자체가 아닌 아베 총리를 겨냥하자는 최근의 일본 불매운동 기조와 맞닿아있다. 본래 일본 불매운동은 NO 재팬을 기치로 시작됐다. 일본 제품을 사지 않고, 일본 여행도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본 전체를 상대로 한 NO 재팬이 아닌 아베 총리와 극우를 향한 NO 아베가 더 적절한 문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베 총리를 규탄하는 일본 시민과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서부상인연합회는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공원 일대에 ‘NO 아베’ ‘일본의 경제침략 규탄’ ‘전쟁범죄 사죄배상 촉구’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설치했다. 민중당 울산시당 동구위원회도 동구 일대 도로변에 NO 아베 문구가 담긴 현수막 130여개를 게시했다. 반면 서울 중구청은 ‘NO 재팬’ 깃발을 중구 명동 일대에 걸었다가 비판을 받고 하루 만에 철거했다.
정치권에서도 NO 재팬 대신 NO 아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지난 8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아베 총리가 후대에 실책보다 업적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면 임팔 전투를 기억하기를 바란다”며 “NO 재팬이 아닌 NO 아베”라고 강조했다. 임팔 전투는 지난 1944년 일본이 인도를 차지하려고 무리하게 진격하다가 궤멸한 전투를 뜻한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지난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일본이나 일본인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라며 “우리가 반대해야 할 것은 아베 총리”라고 이야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NO 아베 문구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온라인에서는 “아베 총리를 뽑은 사람들이 결국 일본인이다” “NO 아베는 일본인이 할 일이다. 우리는 NO 재팬에 집중하면 된다” 등의 글이 게재됐다.
일본은 지난달 반도체 주요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지난 7일에는 전략물자 수출 시 절차를 간소화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내용을 공표했다. 이는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라고 분석됐다. 이후 국내에서는 일본 불매운동이 전개됐다. 정부에서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인 ‘가’ 그룹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