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이들이 국내에서 조금씩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新)친일파’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교보문고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8월 넷째 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반일종족주의’가 1위를 차지했다. 같은 달 둘째 주부터 3주 연속 1위다. 예스24의 ‘9월 국내 도서 종합 월별 베스트’에서도 반일종족주의가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달 판매량을 기준으로 집계된다.
해당 도서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도움으로 조선이 발전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골자로 한다. 강제동원과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해 논란이 됐다.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은 ‘반일종족주의의 최고 상징’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독도는 지난 1905년 무인도 상태에서 일본에 편입됐기에 일본의 영토라는 취지다.
더욱 큰 문제는 해당 도서의 저자들이 일본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반일종족주의 대표 저자는 전 서울대학교 교수인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이다. 이승만학당 소속인 주익종·김용삼씨, 김낙년 낙성대경제연구소(연구소)장, 이우연 연구소 연구위원 등이 집필에 참여했다. 이 교장도 연구소 소속이다.
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988년부터 3년간 한일 양국 학자 15명은 일본 도요타재단으로부터 300만엔(3400만원)을 받아 식민지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소 설립 전이지만 참여 인력 대부분은 이후 연구소에 활동했다. 당시 식민지 근대화론의 토대를 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연구소는 도요타재단으로부터 지난 2005년~2008년 연구비를 지원받아 ‘1937~1950년 한국 농촌사회의 변동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일본 우익단체로부터 지원 받는다는 의혹도 있다. 이 연구위원은 일본 우익단체의 지원을 받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일제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발표를 해 논란이 됐다. 그는 지난 7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정기회의에서 발언 기회를 얻어 “강제연행은 없었다”며 “높은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고 자유로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YTN에 따르면 이 연구위원은 발언자 명단에 애초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 국제경력지원협회(ICSA) 소속 인사 대신 인사 대신 발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ICSA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정부기구다. 유엔 인권이사회에 지속적으로 일본군 위안부가 비강제적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이 연구위원의 체류 비용은 일본의 또 다른 우익 단체인 국제역사논전연구소에서 지원했다.
반성 없는 일본에 대한 옹호는 시위 현장에서도 나온다.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는 지난달 1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과를 촉구했다. 최근 무역제재로 비화된 한일갈등의 책임이 문 대통령에게 있다는 취지다. 주 대표는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일본에 제대로 안 하면 나라가 이 꼴이 난다”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6년 1월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딸이 위안부였더라도 일본을 용서한다”고 말했다.
오프라인뿐만이 아니다. 온라인에서도 일본을 옹호하거나 찬양하는 주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부 SNS 이용자들은 “(일제 강점 직전) 조선은 자국민 중 40%가 노예인 지옥이었다. 당시 전 세계는 식민지 건설을 경쟁 중이었다” “일본이 아니면 (당시 대한제국은) 중국 또는 러시아에 먹혔을 것”이라는 주장을 게재했다. 한국인의 시민의식이 낮다거나 6·25 전쟁 당시 도움을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일본 우익 측의 주장도 번역해 올렸다. 일본 불매운동 ‘NO JAPAN’에 대항해 ‘YES JAPAN’ 운동도 펼쳐졌다. 일본 불매운동은 반일 선동이라고 폄하됐다.
다만 이들은 신친일파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이 교장은 지난달 16일 유튜브를 통해 반일종족주의 논란에 대해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한다고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일제의 지배는 어디까지나 수탈이지만 개발의 효과를 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는) 법과 제도, 시장 등에 새로운 문명이 이식돼 전통과 충돌한 것”이라며 “그동안 교과서에서 가르쳐 온 식민지 약탈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일본군 위안부가 비강제적이었다는 주장은 과거 문건을 연구한 결과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연구소 또한 성명서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연구비를 받아 친일 연구를 수행했다는 비난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도요타재단으로부터 받은 돈은 연구자 개인의 소득으로 지급한 바 없고 답사 경비 등 공동 연구비로만 사용했다”고 전했다.
주 대표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나는 일제강점기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친일파라는 말은 부적절하다”며 “나라는 너무 걱정하는 마음에 나선 것이다. 일제강점은 과거의 이야기다. 이제는 이웃인 일본과 잘 지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주장이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강제동원·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크나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반일종족주의 등에서 나오는 주장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이야기다. 지난 30년 넘게 호소했던 피해자 증언을 거짓말로 치부했다”며 “강제동원 같은 경우에는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 사법부에서도 강제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관계자는 “일본이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논쟁을 계속 만들어 증언을 흠집 내 있던 역사를 없애려 하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굉장한 가해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