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들이 이영훈 전 서울대학교 교수의 저서 ‘반일종족주의’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는 1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반일종족주의 긴급진단 역사부정을 논박한다’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 강제동원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 일반 시민 등 70여명이 토론회장을 가득 채웠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학자들은 반일종족주의에서 주장한 ‘일제 강제동원 부정론’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반일종족주의에는 일본군위안부 등을 비롯한 군사 동원과 노동력 동원은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이라는 취지의 주장이 담겼다. 강제노동·민족차별도 없었다는 것이 골자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강제동원과 강제노동, 민족차별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언과 자료는 차고 넘친다”며 “(책에는) 역사적 진실에 대한 오해와 무지, 왜곡으로 뒤범벅돼 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우익들의 주장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질타했다.
그는 일본 탄광의 노무관리 문서를 강제동원의 근거로 제시했다. 스미토모(住友) 고노마이(鴻之舞) 광업소에서는 조선인보다 일본인에게 50~70% 정도 임금을 더 주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또한 북해도탄광기선주식회사 본사의 노무부장은 지난 1943년 발표된 서적에서 “조선인은 체격은 좋으나 동작이 느리고 둔감해 열차의 뒤를 지키거나 잡역에 적당하다는 상식적 관념을 재검토해야 하는 시기”라고 기술했다. 이는 조선인에게 어렵고 힘든 업무를 강제적으로 맡겼다는 방증이 된다.
일본 내무성 경보국 문서를 통해서도 당시 강제동원이 괴롭고 고달픈 일이었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941년 기재된 문서에 따르면 모집된 조선인 노동자 중 4만3031명이 도망을 쳤다. 이중 8026명(18.7%)이 갱내작업의 공포 탓이었다. 김 연구위원은 “모집으로 간 노동자의 40%가 도망을 갔다”며 “강제동원이 아니었다면 이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하는데 일체의 해명이 없다”고 설명했다.
반일종족주의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있어 ‘일본군은 무죄’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심지어 여성들을 약취한 ‘업자’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외려 조선의 여성을 방매한 가족과 가부장제에 책임을 전가시킨다. 이에 대해 강성현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노예사냥’과 같은 강제연행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달콤한 말과 취업사기로 속여 여성을 국외로 이송했다면 이는 유괴이자 인신매매다. 이 역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군이 위안부 모집을 업자에게 지시하거나 요청했다면 군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강 교수는 반일종족주의에서 인용된 위안부 피해자 고(故) 문옥주씨의 증언에 대해서도 “교묘하게 편집해 축약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본래 고 문씨의 증언집은) 여러 개의 큰 따옴표 문장이 분절돼 구성됐다”며 “한 번에 말한 듯 보이지만 지난 1992년부터 1995년까지 걸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평생 일해야 했다는 말과 남자들은 나를 좋아했다는 말이 한 문단으로 연결돼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15일에는 국제법학자와 역사학자, 독도 관련 단체들이 모여 반일종족주의에서 독도가 한국 땅이 아니라고 기술된 부분에 대해 반박하는 학술세미나를 가졌다. 정태상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연구교수는 “반일종족주의에는 일본에 불리한 자료는 대부분 누락됐다”며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하는 ‘태정관지령’, ‘일본영역참고도’, ‘숙종실록’, ‘만기요람’ 등의 자료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독도가 일본에 편입됐지만 중앙정부는 그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기술도 오류”라며 “지난 1906년 2월 일제 통감부가 설치돼 국정을 좌지우지 하는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최대한의 항의 조치를 취했다. 참정대신 박제순은 일본 영토가 됐다는 보고에 ‘전혀 근거가 없다’ ‘다시 조사해 보고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전 교수를 대표 저자로 하는 반일종족주의는 지난 7월 출판됐다. 집필에는 이승만학당 소속인 주익종·김용삼씨와 김낙년 낙성대경제연구소장,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위원 등이 참여했다. 다만 이 전 교수는 유튜브를 통해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한다고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반일종족주의로 인한 또다른 파장이 일기도 했다. 류석춘 연세대학교 교수는 최근 강의에서 반일종족주의를 언급하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류 교수에 대한 파면을 촉구했다. 연세대는 류 교수의 강의를 중단시키고 심의에 나섰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