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일 ‘생명 징후(바이탈사인)’가 있던 희생자를 응급 헬기에 태우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당시 희생자는 발견 후 4시간40분이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31일 오전 10시 ‘세월호 참사 구조수색 적정성 관련 조사내용 중간발표’를 열고희생자 이송이 상당부분 지연됐다는 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사참위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당일인 지난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24분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인 A군이 해상에서 발견됐다. 당시 채증 영상에서 해경 응급구조사는 A군을 ‘환자’로 호칭하며 심폐소생술(CPR) 등 응급조치를 실시했다. 발견 28분 뒤인 오후 5시52분 해경 3009 함정에 있는 원격의료시스템이 가동됐다. 원격의료시스템에는 불규칙하나 환자의 맥박이 잡히는 상태였다. 당시 산소포화도는 69%였다. 원격의료시스템을 통해 환자를 진찰한 의료진은 “병원으로 긴급히 이송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오후 6시35분 A군 이송을 위해 헬기 탑승 대기 중이던 해경 실무자들에게 “다른 함정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당시 실무자들은 “헬기로 옮겨야지 왜 다른 함정으로 옮기느냐” “여기 위중하다”고 토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군은 이후 3회나 다른 단정으로 갈아탔다. A군이 전남 목포한국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5분이다. 의료진은 오후 10시10분 병원에서 A군에게 사망 판정을 내렸다. A군은 세 번째로 발견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로 기록됐다.
해경은 A군에게 사망 판정이 내려지기 전 이미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채증 영상에 따르면 해경은 이날 오후 7시15분 심폐소생술을 중단한다. 이후 A군을 ‘사망자’로 명명했다.
사참위는 조사 결과 A군이 헬기에 탈 기회가 3차례 있었다고 판단했다. A군이 발견된 후 오후 5시40분 해경 B515 헬기가 3009함에 착함했으나 해당 헬기에는 4분 뒤 김수현 당시 해경 서해청장이 탑승했다. 오후 6시35분 응급헬기가 3009함 상공에 도착했으나 착함하지 못하고 회항했다. 같은 시각, 해경 B517 헬기가 3009함에 착함했으나 이 헬기에도 A군은 탑승하지 못했다. A군이 다른 함정으로 옮겨진 후, 오후 7시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이 B517 헬기에 올랐다.
박병우 사참위 세월호진상규명국장은 “A군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했으나 사망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응급의학과 전문 의료진 다수의 의견”이라며 “당시 헬기에 탑승했다면 A군은 20분 만에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구조 즉시 병원으로 이송하고 전문 처치를 받는 것이 가장 긴급하고 적절한 대처였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기자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다수 참석했다. 해경의 구조 지체 영상이 상영되자 일부 유가족은 흐느낌을 감추지 못했다. 장훈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심장이 떨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이라며 “사참위의 발표 내용은 한 마디로 우리 아이가 처음 발견됐을 때는 살아있었는데 적절한 응급조치가 실시되지 않아 희생됐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생명이 위독한 아이를 이 배 저 배로 옮겨 태워가며 4시간이 넘도록 시간을 끌다가 병원에 도착했다”며 “헬기는 엉뚱한 지휘부가 차지했다. 응급한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사참위는 향후 추가 조사를 통해 해경 고위직 등에 대한 범죄 혐의를 발견할 시 수사를 요청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처벌을 받은 정부 책임자는 김경일 전 해경 123정장이 유일하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김 전 정장의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인정,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김 전 정장이 승객 퇴선 유도 등의 조치를 소홀히 했다고 판단했다. 다른 정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 학생 등 304명이 숨졌다. 이 중 5명의 유해는 여전히 수습되지 못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 영상=사회적참사특별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