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으면 키로 간다고요? 눌려서 못 클 수 있습니다.”
정소정 건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영양을 늘여서 키울 수 있는 키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잘 먹으면 키로 간다’는 속설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요즘 같은 영양 과잉시대에는 단순히 잘 먹는 것보다 아이들이 제대로 먹는지 그리고 얼마나 활동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포동포동 귀여워보여도 적정체중을 넘긴다면 돌배기도 5살짜리 어린이도 모두 ‘과영양상태’다. 따라서 개인에게 맞는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 2세 이상에서는 ‘비만’과 ‘과체중’으로 단계를 구분하고 2세 미만에서는 ‘과체중’이라 진단한다. 소아청소년 비만 전문가인 정 교수는 “비만에 나이 제한은 없다. 특히 영아, 유아, 청소년 시기를 조심해야 한다”며 “늘 통통했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건강한 어른으로 변신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비만 진단을 애써 외면하다 합병증이 생기거나 비만인 성인이 되면 그제야 ‘문제’라며 아이들을 몰아간다”며 안타까워했다.
이토록 소아청소년 비만에 관심을 촉구하는 이유는 그만큼 엄중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비만 인구는 나날이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성인 비만율(체질량지수·BMI 25 이상)은 1998년 26%에서 지난해 34.7%로 20년 사이 크게 급증했다. 또 교육부의 학생건강검사 표본 통계 자료를 보면, 소아청소년 비만율도 2014년 21.1%에서 지난해 25.0%로 꾸준히 올랐다. 우리 소아청소년 4명 중 1명은 비만이라는 결과다. 최근 의료현장에서는 고혈압, 당뇨, 지방간은 물론이고 성조숙증 등 비만연관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소아청소년 환자가 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시절 비만은 자연히 성인 비만으로 이어지고, 전 세대에 걸쳐 고혈압, 당뇨 등 각종 성인병 위험을 높인다. 성인의 경우 체중 증가 시 이미 있는 지방세포의 크기가 커지지만, 성장기 아이들은 지방세포의 수와 크기가 모두 증가한다. 소아청소년기에 비만이었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비만일 확률이 80%나 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도 소아청소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 교수는 “소아청소년 비만의 많은 경우가 성인비만으로 연결된다. 성인비만은 치료가 만만치 않지만,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 사회가 관심만 가져줘도 해결이 쉽게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만은 우리 몸의 지방이 필요량을 넘어서 과잉 축적된 상태다. 지방의 축적량이 위험수위에 다다르면 비만, 심해지면 합병증을 일으킨다”며 “일단 합병증이 생기고 나면 치료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 한계를 넘어서기 전에, 관리 가능한 때를 놓치기 전 접근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인 비만과 만성질환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청소년기 시기만 제대로 관리한다면 아이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보건의료비용과 사회적 간접비용 등을 대폭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0년부터 2050년까지 회원국들이 총 보건비용에서 과체중·비만으로 인한 질병 탓에 쓰는 비용이 평균 8.4%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비만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2016년 기준 11조 5000억원에 달한다.
소아청소년 비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매년 진행되는 학교건강검진에서 ‘비만 위험’이 나오면 병원에 연결하고, 학교나 가정에서 환경점검과 신체활동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정 교수는 말한다. 다만,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 부재’와 있더라고 작동하지 않는 ‘사회의 문제’ 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건강검진에서 과영양상태 또는 비만 위험 등 결과를 부모와 선생님에 알리고 있지만 정작 병원과 연계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저 당뇨 왔어요’라며 뒤늦게 진료실을 찾을 때 마음이 무너진다. 학교건강검진 기록만 유심히 봤어도 더 일찍 개입할 수 있었을 것이고, 발견 당시 관리와 치료가 시작됐다면 합병증 없이 치료가 가능했을 것이다. 당뇨로 넘어간 다음에는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 무척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그는 “학교는 올해 검진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지난해 검진에서는 어땠는지 살펴주셔야 하고, 가정에서는 질병이 의심된다는 가정통신문을 받을 경우 반드시 문제가 있는지 병원에 확인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나이가 어릴수록 주변 환경에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건강에는 많은 정보가 녹아있으므로 아이들의 성적과 마찬가지로 체격에도 관심을 가져주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살 빼’라며 몰아붙여선 안 된다. 아이의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관심을 기울이는 이 우선이다. 그는 “통통한 아이와는 재미있게 놀아주면 된다. 아이들이 놀고 싶은데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가 생활하는 공간이 너무 제한된 것은 아닌지, 갑자기 많이 먹는다면 다른 스트레스가 있는지 살피기만 해도 해법이 나온다”며 “아이들에 관심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비만이니 큰일이라는 식의 태도는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의 체중조절을 위한 식단이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내심 이런 걱정을 하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소아청소년기 비만과 성장은 뗄 수 없는 사안이며 먹는 양을 알맞게 줄인다고 키가 안 크는 것이 아니다. 시기와 특성에 따라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에는 할당된 적정량이 있기 때문”이라며 “키 크라고 먹였는데 눌려서 못 클 수 있다. ‘점프 점프’해서 털어내고 올려야 한다“며 웃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