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오피셜 시크릿’ 캐서린은 왜 국가 기밀을 폭로했나

[쿡리뷰] ‘오피셜 시크릿’ 캐서린은 왜 국가 기밀을 폭로했나

‘오피셜 시크릿’ 캐서린은 왜 국가 기밀을 폭로했나

기사승인 2019-11-23 09:00:00


공무상 기밀을 의미하는 제목부터 엄숙하고 무거운 포스터까지. 언뜻 영화 ‘오피셜 시크릿’(감독 개빈 후드)은 대단히 정의로운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는 시민 영웅 서사처럼 보인다. 이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2003년~2004년 영국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오피셜 시크릿’은 아주 평범한 시민이 정의로운 행동을 하고 위험한 싸움에 뛰어들게 되는 과정에 집중한다.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보다는 등장인물의 마음과 조력자들의 입장을 생각하게 한다. 이 같은 영화의 영리한 전략은 매력적일 뿐아니라, 국제 정치나 영국 공무원법 등 무겁고 재미없는 주제를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든다.

한 통의 이메일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도청과 번역을 담당하는 영국 정보부 요원 캐서린 건(키이라 나이틀리)은 같은 부서원 모두에게 전달된 메일을 읽는다. 미국 NSA에서 보낸 메일에는 이라크 전쟁을 열고 싶은 미국이 UN 찬성표를 얻기 위해 UN 안보리 이사국의 약점을 불법 도청으로 알아내라는 지시가 담겨있다. 영국 정부도 동의한 이 사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느낀 캐서린은 문서 일부를 몰래 유출해 이라크 전쟁 발발을 막고자 한다. 하지만 미국의 침공으로 전쟁은 시작되고 캐서린은 공무상 비밀 엄수법을 어긴 혐의로 기소 위기에 처한다.

‘오피셜 시크릿’은 캐서린을 정의롭고 용기가 대단한 영웅적 시민으로 그리지 않는다. 캐서린이 분개하고 행동에 옮기는 과정을 그리는 동시에,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되돌리고 싶어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캐서린의 행동보다 중요한 건 그의 입장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검찰에 기소되고 유죄를 받을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도 캐서린은 정보부 소속으로 정부를 위해 일하는 자신이 왜 정부의 의도에 반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소속과 지위, 나이와 성별, 가족 관계 등 신상정보와 상황만 봤을 때의 캐서린과 사안을 꿰뚫고 있는 말을 하는 캐서린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사실과 정의를 내세운 캐서린의 지극히 당연한 주장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는 장면들은 통쾌함을 준다.

캐서린 주변 인물들 역시 흥미롭다. 신문사 기자 마틴 브라이트(맷 스미스)와 인권 변호단의 변호사 벤 에머슨(랄프 파인즈)은 영화에서 캐서린을 위해 존재하는 조연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 신념과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잘하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아무 관련이 없던 이들이 왜 캐서린 곁에서 그녀를 돕게 되는지를 묵묵히 설득한다.

끝내 등장하지 않는 건 국가다. 과거 캐서린처럼 국가를 위해 일하는 정보부 상사와 경찰, 검찰이 등장할 뿐,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화를 내고 문제를 덮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정체는 알 수 없다. TV 화면과 가끔 언급되는 이름으로만 등장하는 고위 관리들이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것만 암시할 뿐, 영화는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영화의 이 같은 태도는 국가의 실체가 정체 모를 정부가 아닌 캐서린, 마틴, 벤 같은 국민들이라는 걸 암시하는 듯 하다.

키이라 나이틀리, 맷 스미스 등 출연 배우들 모두 영화의 주제와 톤을 잘 알고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미세한 변화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대단한 연기 없이도 존재감을 보여주는 맷 스미스와 랄프 파인즈의 연기 역시 눈을 뗄 수 없다. 27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