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쥐고 흔드는 마술

[쿡리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쥐고 흔드는 마술

기사승인 2020-02-07 08:00:00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욕망과 욕망이 매끄럽게 물고 물린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은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돈 가방을 동력으로 끝까지 거침없이 질주한다. 특정 인물에 애정을 주는 법도 없고 소외하지도 않는다. 이들의 욕망을 그저 묵묵히 같은 속도로 뒤쫓는다. 하나하나의 멋진 퍼즐이 모여 근사한 그림을 완성한다. 속도와 톤 조절에 성공한 연출력의 승리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겐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오직 하나. 돈이다. 목욕탕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가장 중만(배성우)는 우연히 손님이 놓고 간 돈 가방을 발견한다. 사라진 애인 연희(전도연) 때문에 사채 빚에 시달리는 태영(정우성)은 여전히 호구를 노린 한탕을 꿈꾼다. 잠잠하던 이들 앞에 돈 가방을 든 연희가 나타나며 공기가 변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나이와 성별, 직업은 물론, 이들이 처한 상황이나 욕망의 종류, 크기 역시 모두 다르다. 다르지만 결국 같다. 영화는 인간답게 살기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노력하던 이들을 모조리 개성 없는 짐승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결과 영화 속 세계는 거대한 서바이벌 게임장이 된다. 룰은 단순하다. 누군가 숨거나 도망치면 다른 누군가가 그를 찾아내서 빼앗고 죽인다. 경마장의 말처럼 좌우 시야는 가려졌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유일한 의무다. 본능이 남았을 뿐, 고민이나 망설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관객들이 믿고 의지할 인물은 아무도 없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는 내레이션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도 따로 없다.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치밀하게 설계한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풀어내는 감독의 존재뿐이다. 김용훈 감독은 수틀리면 당장이라도 영상을 뚫고 나올 것 같은 강렬한 캐릭터들을 자유자재로 쥐고 흔든다. 큰 욕심 부리거나 흔들리지 않고 고르게 배열한 이야기로 러닝타임을 가득 채운 감독의 뚝심이 빛난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이나 인과응보(因果應報) 같은 교훈이나 메시지를 강요할 생각이 별로 없는 영화다. 영화의 매력 대부분은 장르적 쾌감에서 나온다. 캐릭터 대부분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만, 특히 배우 전도연이 연기한 연희는 모든 관객에게 쉽게 잊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전도연은 한 명의 배우가 영화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일 미정.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