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에서도 우한폐렴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구에서 온 이 사람이 머물렀던 곳, 들렀던 곳, 택시 탄 장소까지 모두 공개되었다. 이 사람이 함덕에서 노닐 때 우리 부부는 서쪽 중산간 지대와 해변을 걷거나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쉬었으니 겹치는 곳은 없었다.
해마다 봄이면 호흡기 알레르기 증상이 있어 이맘때면 늘 조금의 불편감과 함께 밭은기침과 함께 약간의 가래가 있는 지라 하루하루가 조심스럽다. 올레를 걸으며 방진마스크는 한 달째 구입할 방법이 없어 1월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사 두었던 것을 재사용하고 있다. 그나마 택시와 버스를 탈 때만 잠깐씩 이용한다.
올레 걷고 나서 회복을 위해 이틀 째 집에서 쉬다가 함덕 해변의 즐겨 찾는 식당에 갔다. 비록 휴가철은 아니지만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늘 밤낮으로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이던 거리가 고요하다. 편의점 역시 개점휴업 상태다. 문득 마스크 생각이 나 문을 살짝 열고 물어보니 면 마스크만 있단다. 면 마스크라도 쓰면 조금 더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두 장을 샀다. 마스크가 뭐라고, 한 달 만에 새 것을 손에 쥐니 무엇인가 귀중한 것을 얻은 느낌이다. 정부는 처음 우한폐렴 소식이 들려올 때 대비했어야 했다. 신종플루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 그리고 중동호흡기증후군 (MERS)를 겪지 않았던가.
사오정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저 남의 일이거니 넘기며 정신없이 살았다. 나이 마흔 다섯에 홀연히 내 일이 되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런저런 말들이 많던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무직의 기러기 아빠는 참 무기력하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괴감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직장을 잃고 두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때도 나는 여전히 숨은 쉬고 있었다. 원룸으로 이사한지 한 달 만에 다시 이사를 했다. 삼층에 있는 원룸이었지만 두 배쯤 넓었고 햇빛도 잘 들었다. TV 홈쇼핑 채널을 보다가 면바지와 티셔츠를 샀다. 혹시 외출이라도 할 일이 생기면 입을 요량이었다.
그리고 일을 시작했다. 15년 전 우연히 반도체 매뉴얼 번역을 한 적이 있었다. 그간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적응하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많은 일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일 시작한 첫 달 벌이는 이십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월세 내기에도 턱없는 금액이었다. 어쩌다 잠깐 일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던 때였다. 여름 무더위를 견디며 가끔 하늘과 햇빛이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
천지연폭포
천지연폭포는 높이 22미터, 너비 12미터이며 폭포 아래의 못은 깊이가 20 미터에 이른다. 하늘과 땅이 만나서 이룬 연못이라 하여 천지연이라 부르는데, 폭포를 마주하고 서면 마치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 듯 보인다. 폭포 아래 연못 속에 신령스러운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고, 가뭄 때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폭포 주변의 담팔수 자생지, 무태장어 서식지 그리고 난대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천지연폭포는 폭포 그 자체도 훌륭한 볼거리이지만 주차장에서 폭포까지의 산책로 양쪽의 절벽을 가득 메운 나무와 그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도 오래 기억될 아름다운 풍경이다. 폭포까지 가는 동안 계곡의 암벽을 가득채운 나무와 덩굴로 인해 그늘이 짙다 못해 어둡기조차 하다. 때로는 고요한 물줄기에 비친 나무와 하늘에 정신이 팔려 딴 세상에 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1943년부터 1972년까지는 이곳의 물줄기를 이용한 서귀포발전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70년대 들어 다른 지역의 발전소가 건설되어 전력공급량이 늘어나면서 발전소는 문을 닫고 생태계보호를 위해 건물도 철거되었다. 아직 수로관 일부는 그 때의 흔적으로 남아 있고 건물터엔 표지석이 남아 있다.
천제연폭포
천지연폭포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 12 km 떨어진 곳, 중문관광단지에는 조금 색다른 천제연폭포가 있다. 바다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씩씩한 정방폭포나 무성한 숲속에 단정하게 자리 잡은 천지연폭포와는 달리 천제연폭포는 1km의 험한 계곡에 3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위에 있는 폭포는 물줄기 보기가 쉽지 않다. 정방폭포나 천지연폭포에 물을 대는 하천은 주변의 풍부한 용천수 덕에 사철 마르지 않지만 천제연폭포 상류의 중문천은 건천의 성격이 강해 보통 때는 물이 흐르지 않는다.
물줄기가 없는 대신 천제연 제1 폭포는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흔들림 없이 맑은 연못과 그 연못에 비친 주변의 주상절리와 나무가 함께 그려내는 풍경은 아름다움 그 이상이다. 중문천에 물이 흐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제1 폭포의 연못 주변으로 적지 않은 용천수가 끝없이 흘러나와 연못을 채운다.
제1 폭포를 보고 하류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계곡의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절벽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의 질긴 생명력에 감탄을 하고, 벼랑의 돌을 쪼아내 수로를 만들고 용천수가 모여 흐르도록 해 농업용수로 끌어다 쓴 제주 사람들의 강인한 삶의 의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제2 폭포는 제법 수량도 많고 물줄기도 길어 폭포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다시 더 내려가서 제3 폭포를 보면 물은 더 많아 보이나 물줄기는 짧다.
엉또폭포
제주 말로 ‘엉’은 작은 굴을 뜻하고 ‘도’는 입구를 말하는데 ‘엉또’란 작은 굴의 입구란 뜻이 된다. 서귀포 바닷가에 있는 정방폭포나 천지연폭포와는 달리 엉또폭포는 서귀포시 제2청사 북쪽, 해발 200m의 중산간 지대에 있다.
엉또폭포에 물을 대는 악근천은 평상시 물이 말라 있는 건천이기 때문에 산간 지방에 70mm 이상 큰 비가 온 뒤라야 비로소 높이 50m의 물줄기를 볼 수 있는 독특한 폭포인데, 폭포를 보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위로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사람들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한국방송공사의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에서 배우 이승기가 이곳에 왔다간 뒤 찾아오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다.
비가 오지 않아 폭포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가볼만한 가치는 충분한 곳이다. 물이 떨어지지 않아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폭포 암벽 주위의 경관이 웅장하기 때문이다. 천지연폭포 주변의 얌전한 난대림 숲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려면 주차장에 진입하던 방향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몇 걸음만 걸으면 된다. 귤 과수원과 곳곳에 서 있는 야자나무 너머로 보이는 야성적인 숲이 어우러져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이국적인 풍경을 전해준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쿠키뉴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