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 면세업계가 재고품을 한시적으로 내국인에게 팔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현재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해 창고에 쌓여 있는 재고만 수조원대로 알려졌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팔리지 않고 남은 면세품은 시중으로 유통할 수 없다. 전부 소각 등 폐기 처리를 해야 한다. 불필요한 폐기처분을 막고, 면세점 경영을 돕자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면세점협회와 주요 면세점들은 지난 7일 관세청에 면세물품 국내 통관이 가능하도록 보세물품 판매 규정 완화를 건의했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매출이 사실상 제로(0)에 가까워지는 최악의 상황”이라며 “재고까지 급증해 이중고를 겪고 있는 만큼, 정부에서도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해야한다”라고 호소했다.
면세점은 직매입 구조로 항상 재고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다. 팔리지 않은 이월 상품을 아웃렛 등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백화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에 그간 면세점들은 재고가 발생하면 판매사와 협의해 반품하거나 할인율을 크게 높여 이를 소화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물건을 팔 손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멀쩡한 상품조차 끝내 폐기해야하는 ‘악성 재고’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패션 상품은 판매시기를 놓치면 악성 재고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업계는 관련 규정을 개정해 국내 통관을 가능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통 채널로는 백화점, 아울렛을 거론했다. 면세점은 재고 부담을 덜고, 소비자는 면세점 재고를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논리다. 또 다른 면세업계 관계자는 “패션 상품이라도 판매를 허용해 준다면 경영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일단 규정 개정 권한을 쥔 관세청이 움직여야 하는데다, 이를 허용한다고 해도 판매 방식과 가격 책정 역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미 백화점과 아웃렛에 내수용 상품을 파는 업체들이 있는 만큼, 이들의 반발 가능성도 나온다. 이에 관련 논의에만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실제로 과거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 당시에도 면세업계는 면세품의 국내 유통을 요구했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관세청 역시 “업계의 건의만 청취한 상태”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면세업계는 전례 없던 비상 상황인 만큼,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매출이 90%이상 감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며 사실상 ‘고사 상태’에 놓여 있는 탓이다. 수요가 없어 재고가 '악성 재고'로 쌓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면세점 매출은 전월 대비 ‘반토막’이 났다. 지난달 국내 면세점 총 매출액은 1조1026억원으로, 전월(2조248억원) 대비 46% 급감했다. 전년 동기(1조7416억원)와 비교해 봐도 36.7% 감소했다. 유럽과 미국 등의 해외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이달에는 90% 이상 매출이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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