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아무도 예상하지 못 한 판도다. 지난해 TV조선이 트로트 오디션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 론칭 소식을 알렸을 때, 프로그램의 성공을 점치는 이는 드물었다. 유행이 끝나가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마지막 시도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뚜껑을 여니 예상과 달랐다. 송가인이라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고 시청률은 18.1%(닐슨코리아, 유료가구, 이하 동일)를 넘어섰다. 트로트 열풍의 시작이었다. TV조선은 기세를 몰아 지난 1월 ‘미스트롯’의 시즌2격이자 남성판인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을 방송했다.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미스터트롯’의 시청률은 35.7%까지 치솟았다. ‘미스트롯이’ 당긴 트로트 유행 불씨에 ‘미스터트롯’이 기름을 부은 것이다.
불타오르는 트로트 유행 위에서 TV조선의 ‘미스터트롯’ 유니버스가 탄생했다. 앞서 한 차례 오디션을 겪은 제작진은 이번에 더 치밀하게 오디션 이후를 준비한 듯 보인다. ‘미스트롯’ 후 우승자인 송가인을 내세운 ‘뽕 따러 가세’를 방영했던 것처럼, ‘미스터트롯’을 마친 후 그 자리에 결승 진출자 7인이 출연하는 ‘사랑의 콜센타’를 편성했다. 첫 회부터 시청률 20%를 돌파한 ‘사랑의 콜센타’는 9회까지 그 성적을 유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TV조선은 지난 13일 새 트로트 예능 ‘뽕숭아학당’의 방송을 시작했다. 여기에도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인 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가 출연한다. ‘미스터트롯’ 종영 후 스페셜 방송 ‘미스터트롯의 맛’을 두 차례 방영했고, ‘미스터트롯’ 출연자 다수가 ‘아내의 맛’에 등장한 것까지 세면 올해 TV조선 예능은 ‘미스터트롯’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프로그램 출신 출연자가 화면을 채운다고 해서, ‘미스터트롯’ 유니버스가 구축된 것은 아니다. TV조선은 오디션 과정서 만들어진 출연자의 캐릭터와 서사를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사랑의 콜센타’에서 결승 진출 7인을 아이돌 그룹 처럼 운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나이가 가장 많은 장민호는 맏형이자 리더 역할을 맡고 우승자인 임영웅이 팀 내 센터, 나이가 어린 정동원은 귀엽고 실력 있는 막내 역할을 맡는 식이다. 다른 출연자들에게도 각자에게 어울리는 역할이 주어졌고, 이는 K팝 남성 아이돌 그룹이 전통적으로 추구해온 이미지와 닮은 부분이 있다. 매주 7인이 함께 안무를 곁들여 노래하는 단체 무대나 팬 서비스를 보면 이런 생각은 더욱 짙어진다.
이해할 수 있는 전략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는 세계관 형성에 필수다. 만화 캐릭터를 가져와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끊임없이 확장하는 히어로무비를 떠올리면 쉽다. 최근 여러 방송인이 ‘부캐’를 내세우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여기에 그룹 아닌 그룹 활동까지 더해지면 인기나 화제성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아쉬운 점은 TV조선이 ‘미스터트롯’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확장에만 집중할 뿐, 방향성에 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얼마 전 방송을 시작한 ‘뽕숭아학당’은 트롯맨 F4로 묶인 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가 초심으로 돌아가 대한민국 최고의 트로트 가수로 거듭나기 위해 배움을 이어간다는 기획의도를 내세웠다. 하지만 막을 올려보니 맥락 없고 의미 없는 버라이어티 쇼에 가깝다. 출연자에게 배움이나 새로운 기회를 주기보다 그들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에 급급해 보인다. 최근엔 TV조선이 아닌 다른 방송사들도 앞다투어 이들을 섭외하고 이들의 캐릭터를 그대로 사용해, 손쉽게 시청률을 얻는다. 쉽게 만들어진 세계는 빠르게 무너질 수 있다. 오랜만에 빛을 본 트로트가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고민 없는 확장을 잠시 멈추고 ‘미스터트롯’에서 시작된 세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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