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가해자 다수 청소년인데” 표준안·코로나19에 휘청이는 성교육

“N번방 가해자 다수 청소년인데” 표준안·코로나19에 휘청이는 성교육

기사승인 2020-08-19 06:20:01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 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10대의 성범죄가 잔혹하게 진화하고 있다. 성교육 체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일 기준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 1414명 중 442명(31%)은 10대다. 미성년자를 협박해 불법촬영물을 제작·유포한 가해자 ‘태평양원정대’ 이모군은 중학교 3학년이다. 이군은 조주빈이 운영한 ‘박사방’의 유료 회원이었다가 직접 텔레그램 성착취물 공유방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중생 등을 협박해 성착취물 제작·유포 혐의를 받는 ‘로리대장태범’ 배모군은 만 19세다.

성착취물을 유포, 부당한 금전적 이익을 챙긴 10대도 있다. 인천지법 형사8단독 성준규 판사는 지난 12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군(19)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A군은 지난 2018년 2월부터 지난 3월까지 SNS 계정을 통해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물을 재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성착취 영상물 유통으로 48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다수도 10대다. 확인된 피해자 714명 중 10대는 408명(62%)에 달했다.

▲지난 3월18일 오후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학원을 향하고 있다. / 박태현 기자
성범죄 양상이 달라지며 성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교육부는 지난 2015년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 전국 초·중·고등학교 성교육에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함께 배포된 교사용 학습자료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빗발쳤다. 당시 자료에는 ‘데이트 성폭력은 여성이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아 발생할 수 있다’, ‘이성 친구와 단둘이 있지 않는다’, ‘남성의 성적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충동적이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후 교육부는 수정된 학습자료를 배포했다.

18일 기준, 교육부 학생건강정보센터에 게재된 성교육 표준안은 2015년 1월 자료다. 디지털성범죄가 떠오르기 전 만들어진 자료이기에 관련 내용은 전무하다. 표준안은 초·중·고 전 과정에서 ‘거절의 방법’을 중심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 제시하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과정에는 ‘윗사람에게 상황에 맞게 거절하는 방법’이 대처기술로 편성됐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성폭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결국 피해자가 조심해야 한다는 방식의 서술”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성교육 방식이 반발에 부딪힌 일도 있다. 지난달 전남의 모 고등학교 교사가 바나나에 피임 기구를 끼우는 성교육을 하려다가 학부모 반발로 수업을 취소했다. 해당 교사는 1학년 기술·가정 과목 ‘임신과 출산’ 단원에서 콘돔 끼우기 실습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학부모들이 “성범죄를 부추긴다”며 학교에 항의, 실습은 취소됐다. 광주의 한 고등학교 도덕 교사가 성 윤리 수업 중 프랑스 영화 ‘억압당하는 다수’를 상영한 것도 논란이 됐다. 해당 영화는 남성 중심의 전통적인 성 역할을 뒤집은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성들이 윗옷을 벗은 채 조깅을 하거나 여성이 남성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려는 장면 등이 등장한다. 해당 교사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으나 검찰은 최근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코로나19 관련 방역 작업이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다. / 박태현 기자 
대부분의 학교에서 의무적 성교육마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교육부는 학년당 1년에 15차시 이상의 성교육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다른 교과 수업과 연계할 수 있다는 ‘허점’도 함께 마련됐다. ‘동물의 한 살이’, ‘우리 동네 안전지도’ 등의 수업을 하며 성교육을 했다고 끼워 맞추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며 성교육은 더욱 ‘뒷전’이 됐다. 학교 내 성교육을 담당하는 보건교사들은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활동 중이다. 보건 교사뿐만 아니라 다른 교사들도 코로나19 관련 업무 부담을 호소했다. 이에 교육부는 성교육 등 비교과 의무교육의 부담을 50%까지 줄이도록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6월 국회에 학사운영 차질 시 성교육과 같은 법정의무교육을 면제하는 특별법 제정을 요청했다.

일선 교사들은 현행 성교육 체계가 변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서한솔 교사는 “표준안은 현재 아이들의 성지식 수준에 맞지 않는다. 표준안 내용대로 진행하면 아이들에게 교육 동기유발이 되지 않고 교사는 비웃음을 살 뿐”이라며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기보다는 교사를 통해 올바른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교육에 대해 어느 정도 선까지 가르쳐야 하는지 다들 생각이 다르다. 학부모가 ‘왜 이런 것을 가르치냐’고 항의하면 속수무책이 된다”며 “교사가 기준을 잡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표준안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부산지부 여성위원장인 장병순 보건 교사는 “표준안은 2015년부터 문제가 됐지만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며 “이미지 등이 수정됐을 뿐이다. 논란이 됐던 가치관은 표준안에 그대로 녹아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현장 교사들은 혹시나 수업 내용을 학부모들이 문제 삼지 않을까 늘 줄타기 하는 심정으로 성교육을 가르친다”며 “유네스코의 ‘포괄적 성교육 지도안’에는 초등학교부터 콘돔 사용법 교육이 포함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적용이 힘들다. 여성의 생식기도 자궁 외에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5월 등교 개학을 맞아 한 초등학교 교사가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반기고 있다. / 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전문가는 학교 성교육의 종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는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성교육 표준안은 이미 5년 전에 만들어졌다. 디지털 성폭력 등 범죄 양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현재에 맞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면서 “이상적인 성교육을 위해서는 성교육 수업 시수의 확보와 콘텐츠 개발, 교사의 능력 함양 등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이 상임대표는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왜곡된 영상을 통해 성을 배우게 될 것”이라며 “무조건 알려주지 않거나 하지 말라는 방식으로는 성을 교육할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하는 방법과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등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