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영수 기자 = 일제강점기 판소리 대중화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하고도 판소리사에서 잊혀진 서도소리 명창 박월정(朴月庭. 예명 朴錦紅. 1901 ~ ?)의 판소리 음악이 조명된다.
판소리꾼 대부분이 전라도, 경상도 등 남한 출신인 반면, 박월정은 북한(서도)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판소리를 학습한 후 서울로 내려와 활동했던 유일한 소리꾼이었으며, 음반으로 확인되는 최초의 창작판소리 ‘단종애곡’을 부른 소리꾼인데다, 1931년 남성중심의 판소리 공연문화를 깨고, 판소리 공연 사상 처음으로 김초향, 박록주, 박월정 3명이 중심이 된 ‘삼여류명창 공연’을 선보인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박월정의 진보적 공연관이 그의 생애와 작품과 함께 본격적으로 조명된다.
경서도소리포럼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2020전통 예술복원 및 재현사업 -‘서도명창 박월정의 판소리 복원 연구’(책임 유옥영)는 박월정 명창이 일동레코드, 빅타레코드 등에 남긴 판소리 고음반을 바탕으로 박월정의 판소리 특징과 판소리사에서 업적을 재조명하는 연구발표회로, 오는 10월 8일 오후 3시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형관에서 열린다.
이날 연구발표회는 유옥영 책임연구원의 박월정 판소리 미학과 복원 연구의 가치에 대한 발제를 시작으로, 김인숙 교수의 박월정 단가, 창작판소리의 음악적 특징과 의의에 대한 발제, 이윤정 교수의 박월정 판소리의 음악적 특징 발제가 차례로 진행되며, 박월정 명창의 창작 판소리 ‘항우와 우희’를 염경관 군이 시연하게 된다. 또한 한윤정 연구원이 박월정 명창의 다양한 활동을 정리하여 소개하게 된다.
이날 박월정의 단가와 창작판소리 4작품을 중심으로, 박월정의 판소리의 음악적 특징을 발표하는 김인숙 교수(55. 한국한중앙연구원)는 “박월정의 단가는 모두 고제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창작판소리나 단가에서 보여지는 공통적인 특징중 하나인 단중모리 장단에 익숙하며, 는박 준박이 자주 등장하고, 계면조 대신 우조나 평조성음을 잘 쓴다는 점에서 중고제적 특징을 가진 명창으로 추정된다”고 보았다.
박월정의 춘향가 음반을 중심으로 음악적 특징을 발표하는 이윤정 단국대 겸임교수는 “진양 대신 세마치(빠른진양)로 부르는 것 역시 고제 특징 중 하나이며 판소리에 등장하는 음중 ‘레’와 ‘라’를 떨어서 소리내는 특징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서도지역 판소리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박월정의 음악을 평가 했다.
유옥영 책임연구원은 “박월정의 사설이 만정제나 박록주제 춘향가에서 일부 유사성이 있으나 대개는 그 이전에 불리던 사설이 중심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황해도에서 학습한 이력 등을 감안할 때 황해도 지역의 판소리 문화권에 대한 세밀한 연구와 논의를 넓힐 수 있는 단초가 되는 작업”이라면서 “향후 북한과의 문화교류를 통해 해방 후 월북한 판소리 예술가들이 활동하기 이전 북한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했던 판소리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판소리사에서 많은 기여를 했음에도, 오늘날 판소리사에서 그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한윤정 연구원은 “우선 조선성악연구회의 전신인 조선음률협회에서 김초향, 박록주와 함께 많은 활동을 하고도 조선성악연구회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는데, 이는 남도출신이 아닌데 따른 일종의 소외가 작용했을 수도 있으며, 또 남편인 이기세는 신연극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공과가 있는 반면, 매일신보 편집책임자를 역임하면서 벌인 친일적인 행동에 부담을 느껴 스스로 활동을 접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김문성 대표는 ‘박월정은 판소리 대명창으로 추앙받는 이화중선, 박록주, 김록주, 김초향, 배설향에 앞서 판소리를 녹음한 여류소리꾼으로, 당시 여류 소리꾼들이 대개 남도잡가 정도를 녹음할 때 박월정은 판소리 대목들을 녹음할 정도로 뛰어난 소리꾼으로, 남성중심으로 전승 및 공연체계가 이루어지던 구조를 깨고, 여성중심의 판을 새롭게 짜고 시도했다는데 박월정의 존재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남도소리계에서 그를 인정해주지 않는데 대한 실망감도 컸을 것“이라며 박월정의 활동이 줄어든 이유를 남도소리꾼들의 집단주의가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으로 보았다. 한편 김문성은 ”박월정의 딸은 김남조 시인과 서울대 사범대 동기 동창’으로, 해방후 서울에서 요리집을 운영했으며, 한국전쟁 이후의 삶의 궤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며 박월정의 생애에 대한 좀더 전문적인 조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편 이날 행사 중간에는 우리나라 초기 창작 판소리 작품중 하나인 박월정의 ‘항우와 우희’(패왕별희‘를 염경관 군이 김민서 고수의 북에 맞춰 시연한다. 염경관 군은 현재 한국예술종합대학교에 재학중인 판소리 수재로, 스타킹을 통해 대중적인 천재 소리꾼으로 알려졌으며, 최근에는 KBS의 트롯 전국체전에도 나오는 등 많은 활약을 하고 있는 소리꾼이기도 하다.
이날 연구발표회는 무관객 비대면으로 진행되며, 해당 발표 영상은 후에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함께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자료 문의는 경서도소리포럼으로 문의하면 된다.
박월정(1901~?)
기생 박금홍으로 더 잘 알려진 박월정은 평안남도 강서 태생(황해도 사리원 태생으로 기록한 경우도 있음)으로 봉산사리원에서 학습했으며, 서도소리 명창으로 사설공명가, 배따라기, 수심가를 잘 불렀다. 1913년 상경해 장안사 소속 배우로 활동하였다. 구파배우조합 소속 예인으로 이동백, 김창룡 등과 활동한이후 이기세의 소개로 연극좌에 가입해 연극에도 참여했으며, 서도소리뿐만 아니라 판소리에도 뛰어난 덕분에 1925년 일동레코드의 초기 판소리 녹음을 도맡아 시피 했다. 1933년 판소리 대중화를 목표로 연극적인 아니리와 판소리 창의 컬리버레이션을 시도한 창작 판소리 단종애사가 주목받았으며, 춘향가를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또한 패왕별희로 잘 알려진 ‘항우와 우희’ 역시 연극과 판소리를 결합한 창작판소리로 발표해 주목받았다.
박월정은 전설적인 여류명창들인 김초향, 박록주(전 판소리 인간문화재)와 함께 1931년 삼여류명창 공연으로 개성, 사리원, 서울 공회당 무대에 올라 춘향가, 심청가 등 판소리를 공연하기도 했다. 다만 그녀의 학습이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판소리외에도 서도소리, 경기잡가, 시조, 가사등 많은 국악음반을 남겼다. 국악이론가 김기수는 그가 저술한 국악명인전에 박월정을 남도서도소리에 두루 능통한 소리꾼으로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기교로 볼 때 전승이 단절된 중고제를 학습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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