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국가 안보와 유가족의 알 권리가 충돌할 경우,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북한군에 의해 피격 사망한 공무원의 유가족이 국방부에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 다만 관련 자료가 공개될지는 미지수다.
피격 공무원 이모(47)씨의 친형 이래진(55)씨는 6일 오후 3시 국방부 종합민원실 앞에서 정보공개청구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구대상은 두 가지다. 지난달 22일 오후 3시30분부터 같은 날 오후 10시51분까지 국방부에서 소지하고 있는 감청 녹음 파일이 첫째다. 오후 3시30분은 북한군이 공무원을 발견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이다. 두 번째 청구 대상은 같은 날 오후 10시11분부터 10시51분까지 피격 공무원의 시신을 훼손시키는 장면을 녹화한 영상 파일이다. 오후 10시11분~오후 10시51분은 북측에서 불빛이 포착됐던 시간으로 전해졌다.이래진씨 측은 이날 국방부가 소지한 정보가 공개되면 ▲사망한 공무원이 월북 의사 표시가 국방부의 발표대로 있었는지 ▲ 월북 의사 표시가 있을 경우, 그 의사 표시가 사망한 공무원의 목소리인지 ▲ 북한군의 총 앞에서 월북 의사표시를 진의에 의해 발언한 것인지 등을 알 수 있다고 봤다.
이래진씨 측 변호인은 “군사기밀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유를 물었을 때 국가기밀이라고 비공개하는 것은 군사기밀 존재의 의미를 잃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정보공개를 통해 잘못된 점을 고쳐나가야 한다”며 “비공개 처분을 할 경우, 행정소송도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해양경찰청(해경) 등은 해양수산부 소속 서해어업지도관리단 해양수산서기(8급)인 공무원 이씨가 지난달 22일 월북을 하다 숨졌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윤성현 해경 수사정보국장은 “이씨가 북측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탈진한 상태로 부유물에 의지한 채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며 “이씨만이 알 수 있는 이름, 나이, 고향 등 신상 정보를 북측이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고 월북 의사를 밝힌 정황 등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유가족은 월북 주장을 믿지 못하겠다며 반박에 나섰다. 이씨가 실종된 당일까지 지인들에게 꽃게 판매를 중계한 점과 가족에게 월북 관련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 등이다. 이씨의 아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필 편지를 통해 “아빠의 명예를 돌려달라”며 “나라에서 하는 말일뿐 저희 가족들은 어떤 증거도 본 적이 없기에 발표를 믿을 수가 없다. 설득력 없는 이유만을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총을 든 북한군이 이름과 고향 등의 인적사항을 묻는데 말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면 누구나 살기 위한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래진씨도 “동생이 배에서 실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바다에 시체가 떠 있어도 부유물이라고 지칭한다. 해경이나 군에서 동생이 부유물을 타고 있었다고 하지만 어떤 부유물인지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공무원 이씨가 우연히 부유물에 올랐을 수도 있는데 월북을 위해 미리 준비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는 취지다.
다만 유가족 측의 요청처럼 국방부의 감청 정보 등이 공개될 확률은 높지 않다. 정보공개 기준에 따르면 안보·국방·통일·외교 등에 관련해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비공개할 수 있다. 국방부는 ‘정보보호 중장기 발전계획’과 ‘정보화 조직 및 전문 인력 활용 발전계획’ 등도 비공개하고 있다.
최근 국회의원 등을 통해 정보 자산이 이미 노출돼 피해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북한 상부에서 (피격 공무원을 대상으로) ‘762하라’고 지시했다. 북한군 소총 7.62㎜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논란이 됐다. 관련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보원이 노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주 원내대표 발언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국방부 대변인은 “민감한 첩보사항이 임의대로 가공되거나 무분별하게 공개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군의 임무수행에 많은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전문가도 국방부의 정보 공개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육군 대령 출신인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는 “공식적 직함을 가진 국회의원과 달리 민간인에게는 군사기밀 정보를 함부로 공개할 수 없다”며 “공개된 정보를 듣기 위한 비밀 취급 인가가 날 가능성도 낮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측의 정보 자산이 이미 많이 노출된 상황이다. 향후 북한의 보안장치를 뚫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며 “군사기밀이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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