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가 말한 ‘살인의 추억’…“특별한 감정 없었다”

이춘재가 말한 ‘살인의 추억’…“특별한 감정 없었다”

기사승인 2020-11-02 19:27:13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당시 사건 현장과 진범 이춘재의 모습. 연합뉴스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정유진 인턴기자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가 법정에서 피해 유가족 등 사건 관계자에게 사과했다. 다만 일부 진술에서는 여전히 죄책감 없는 모습을 드러냈다.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박정제)는 2일 오후 1시30분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재심 공판을 열었다. 이춘재는 이날 증인으로 출석했다. 파란 수의에 가슴에는 노란 명찰을 달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흰색 천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다. 

법정에 선 이춘재는 과거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불린 10건의 살인과 지난 1987년 수원 화서역 인근에서 발생한 고등학생 피살사건, 지난 89년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 등이 본인의 범행이라고 인정했다. 

재심에 회부된 ‘8차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라고 증언했다. 8차 사건은 지난 88년 9월16일 당시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자택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성폭행 당한 뒤 숨진 사건이다. 경찰은 이듬해인 지난 89년 윤성여씨를 범인으로 지목, 검거했다. 윤씨는 재판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년을 복역한 윤씨는 지난 2009년 가석방됐다. 이춘재의 자백 이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춘재는 법정에서 8차 사건의 범행 수법 등을 상세히 진술했다. 그는 “(피해자가 살기 전) 동네 선배와 동생이 살던 집이다. 과거 자주 갔었다”며 피해자의 집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사건 당시 주취 상태였지만 충분히 의식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춘재는 “(인근에) 슈퍼 많았기에 가게 밖 의자에서 친구를 만나 간단하게 술을 마셨다”라며 “인사불성 될 정도는 아니고 충분히 의식 있었다”고 부연했다. 

▲2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이춘재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송차가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춘재는 법정에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화성초등생 실종 사건 유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윤씨 측 박준영 변호사의 질문에 “사건을 벌이고 난 후에 많이 후회를 했다”고 답했다. 그는 “이 사건뿐만 아니라 제가 한 모든 사건에 관계된 모든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자백함으로써 죄가 드러났기에 그나마 위안이 된다. (유가족이) 마음의 평화를 찾으셨으면 좋겠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생활을 하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발언도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사과였다. 이춘재는 “저로 인해 모든 일이 시작됐기에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이 사건에 대해 밝힌 것이 조금이나마 누군가에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야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가족 등 사건 관계자가) 마음의 안정을 찾길 바란다. 남은 생을 참회하며 살겠다”며 퇴정했다. 

▲이춘재가 출석해 증언할 법정 모습. 연합뉴스 

이춘재의 사과는 진실됐을까. 그의 재판 증언을 돌아보면 의문은 남는다. 이춘재는 재판에서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연쇄살인사건 당시 떠들썩했던 보도 등에 관심을 가진 적 없느냐는 박 변호사의 질문에 “찾아본 일이 없다”면서 “사건 현장을 제가 지나다니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범행을 저지르고 난 다음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얽매이지 않았다”면서 “남이 저지른 일을 증언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사건에 대해) 큰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에 대해서도 “영화를 봤지만 특별한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한다면 사건을 떠올리고 괴로워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많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서 “사건을 떠올리면 무척 힘들었다. 그냥 지금 현실에 충실하게 생활하려는 생각이었다”고 이야기했다.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과 ‘8차 사건’ 피해자의 얼굴에 대해서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14건의 살인사건과 34건의 강간·강간미수 사건 등 범행 횟수를 기억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8차 사건을 비롯해 연쇄살인사건 및 강간·강간미수 사건의 동기에 대해서도 명확히 답하지 못했다. 이춘재는 “동기에 대해 계속 생각해봤는데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며 “그냥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일이 벌어져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범행 동기에 대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계획하지 않았다” “그냥 그때 상황이 맞아떨어져 무의식중에 행동을 했다” 등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춘재가 출석해 증언할 법정 모습. 연합뉴스 

당시 치안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이춘재는 연쇄살인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는 “검문당한 적은 있지만 특별히 긴장한 적은 없다”며 “형사들과 여러 번 마주쳤지만 주변인에 대해 질문하는 것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사건이 발생하면 수사관들이 몇백명씩 수사에 나섰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후 싹 빠져나가는 일이 반복됐다”며 “보여주기식 수사라고 생각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춘재는 지난 86년 9월부터 지난 91년 4월까지 14건의 살인사건을 저질렀다. 살인사건 외에도 이춘재가 자백한 34건의 강간·강간미수가 실제 이뤄진 범행으로 판단했다. 다만 입증 자료가 충분한 9건의 강간사건만이 이춘재의 범행으로 공식 확인됐다.

soyeon@kukinews.com
이소연,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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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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