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최기창‧김은빈 기자 =전 세계 장애인 운동선수들의 가장 큰 축제인 패럴림픽에 파견될 우리나라 선수단장의 자격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횡령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유예 받은 인물이 한국 선수단을 대표하는 얼굴이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그가 여당 유력 정치인과 친밀한 관계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다.
주원홍 대한장애인테니스협회장은 지난 5월12일 도쿄 패럴림픽 선수단장에 선임됐다. 이후 이달 17일 경기 이천훈련원에서 열린 도쿄패럴림픽 D-100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선수단장을 맡게 돼 영광이다. 선수단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강인하게 대회를 준비해왔다. 안전하게 대회에 참가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체육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과거 그의 행적에 도덕성이나 자질에 대한 물음표가 붙은 탓이다.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주 회장은 과거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4단독 이관용 부장판사는 2017년 10월18일 대한테니스협회 회장 재직 당시 공금 8500만원을 임의로 쓴 혐의로 기소된 주 회장에 200만원 벌금형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란 형 선고를 미뤘다가 사고 없이 지내면 판결 내용이 사실상 사라지는 처분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선고유예란 사실상 유죄”라고 설명했다.
장애인체육회는 주 회장의 ‘벌금 200만원 선고유예’는 결격 사유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가맹단체운영규정’ 중 제14조 임원의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다는 논리다. 가맹단체운영규정에 따르면 국가공무원법 제33조에 해당하거나 형법 제355조 및 제356조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으로서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사람은 가맹단체의 임원이 될 수 없다.
다만 올림픽 선수단을 총괄하는 대한체육회의 상황과 비춰보면 장애인체육회의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대한체육회 측은 ‘올림픽 선수단장’ 선정 과정에서 논란이 있는 인물들이 걸러진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선수단을 대표해서 가는 만큼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은 내부적으로 심의하는 게 맞다”고 했다.
특히 ‘선수단장’의 의미를 고려하면 해당 인사의 적절성은 더욱 큰 논란이 된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한 지도자는 “선수단장은 전체 선수단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는다. 장애인 스포츠단이 국위선양에 일조하는 만큼 중요한 자리”라고 말했다.
체육계 일각에서는 그가 여당 유력 정치인과 긴밀한 관계라고 의혹을 제기한다. 해당 정치인은 더불어민주당 핵심 중진인 안민석 의원이다. 중앙대 사회체육학부 교수 출신인 안 의원은 체육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쿠키뉴스 취재 결과 주 회장은 안 의원이 정계에 입문하기 전부터 체육시민연대에서 활동을 함께했다. 주 회장은 안 의원이 당선된 뒤 후원회를 통해 정치 활동을 도왔다. 주 회장은 지난 8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후원회장은 아니다”라면서도 “후원회인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안 의원실도 9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후원해주는 분이 맞다”고 했다.
둘의 관계는 체육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확인된다. 과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안 의원은 2018년 10월23일 국정감사 당시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이천훈련원장을 향해 주 회장이 대한테니스협회장 사퇴 권고를 받은 이유를 따져 물었다.
안 의원은 당시 “주 회장에게 대한테니스 협회장 사퇴 권고를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 맞나. 사실이 아니라면 책임져야 한다. 참고로 저의 위원장 임기는 한참 많이 남았다”며 엄포를 놨다.
이에 대해 안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주 회장이 김종 차관으로부터 박해를 받은 것에 대해 저지하고 복권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의원이 사실상 국회에서 주 회장의 구명활동을 펼친 셈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아울러 정권이 바뀐 이후 공금 횡령 혐의로 영구제명이 됐던 주 회장이 체육계에 돌아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운 인물 역시 안 의원이다. 주 회장도 이를 인정했다. 그는 “안 의원이 저를 서울시체육회 부회장으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추천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체육단체장 자격 관련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는 체육계는 속병을 앓고 있다. 지난해 12월 영화 ‘베테랑’의 모티브가 됐던 ‘맷값 폭행’ 가해자 최철원 씨가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차기 회장으로 당선돼 파장이 일었다. 이때 안 의원은 체육단체장의 결격사유와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최철원 금지법’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한 체육계 인사는 “주 회장은 전부터 문제가 많았던 인물”이라며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패럴림픽 단장으로 간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올림픽 무대에 섰던 적이 있는 한 인물 역시 한숨을 쉬었다. 그는 “체육계 인재가 많은데 한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논란이 있는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은 문제다. 정치권과 연결된 인사들이 체육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오래된 일”이라며 “선수들은 경기 준비만 집중해도 부족한 시간일 텐데 정치판까지 개입돼 있다면 속 시끄러울 것”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해당 의혹에 대해 당사자인 주 회장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장애인체육회 회장이 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해서 도와주는 것뿐이다. 정치권과는 관계없다”면서 “패럴림픽 단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고생하러 가는 봉사직”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안 의원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다만 안 의원실 관계자는 “주 회장과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긴 하지만 패럴림픽 단장이 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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