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계에 따르면 이날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안은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시행일이 불과 4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산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특히 다른 산업보다 상대적으로 중대 재해사고 가능성이 큰 철강·석유화학·조선업 등 제조업계는 당황해하는 기색이다.
다소 애매한 관련 규정으로 인해 안전대책을 어떤 식으로 세워야 할지도 막막하고,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자에게 무조건 책임을 묻는 규정으로 인해 경영의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대한상의, 경총 등 경제단체들이 모호한 법 규정 등을 언급하면서 개선 의견을 피력했음에도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시행령이 확정돼 안타깝다”며 “시행령대로라면 일선 현장 경영자들은 적절한 시점과 상황에 사업 확장에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경영위축도 불가피하다”고 했다.
또 다른 제조업 관계자는 “어떠한 기업도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길 바라는 곳은 없을 것”이라며, “기업 차원에서도 지속해 안전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 안전대책을 강화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강화한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모든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정부의 시행령 제정에 앞서 중대재해처벌법상 불분명한 경영책임자 개념과 의무내용 등을 언급하면서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면서 보완 입법을 여러 차례 건의했다.
하지만, 산업계의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이날 유감을 표명하는 입장문을 냈다.
학계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대해 부족한 입법이라면서 향후 개정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입법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한다고 대표에게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며 “시행령이 확정돼 당장 개선은 어렵지만, 향후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이 아닌 중대재해 방지가 목적이 돼야 하는데 부적절하게 처벌이 이뤄지면 오히려 재해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며 “특히, 산업 구조 상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고, 향후 기업들은 가능하면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확정된 시행령이 중대재해의 범위를 과도하게 축소했다고 지적하는 학계 의견도 나왔다.
이철갑 조선대 작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국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시행령까지 만들어지면서 기업들의 입장을 받아들여 중대재해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바뀐 측면이 있다”며 “시행령안이 원래 법 취지와 어긋나는 만큼 국회법에 따라 다시 논의되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경영자 등이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등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걸로 드러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시행령은 이을 구체화한 것으로 중대재해의 직업성 질병 범위, 중대시민재해의 공중이용시설 범위,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 안전·보건 교육 수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