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는 지난 20일(현지시간) 3분기 실적발표에서 자사의 전 차종 ‘스탠다드 레인지’ 모델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미지역에서 판매된 테슬라 스탠다드 모델에도 삼원계 배터리 대신 중국업체가 주로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소식이 전해지자 삼원계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국내 배터리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요동쳤다.
22일 국내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주가는 각각 4.05%, 0.55%, 0.39% 하락했고, 국내 양극재 생산업체인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도 각각 8.8%, 6.3% 주가가 내렸다.
하지만 시장의 불안과 달리 국내 배터리사들은 위기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업체와 배터리 동맹 구축을 통해 지속적인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고,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에도 나서고 있어 배터리 주도권을 뺏기지 않을 거란 이유에서다.
또한, 세계 전기차 1위이자 선도 기업인 테슬라의 행보 하나하나가 크게 작용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글로벌 완성차기업들이 앞다퉈 각자 방식에 따라 전동화 전략을 구축하고 있어 테슬라의 입김으로 세계 전기차 시장이 좌우되진 않을 전망이다.
테슬라 이외 폭스바겐과 포드 등도 리튬인산철 비중 확대를 검토 중이긴 하지만, 저가형 또는 보급형 전기차에 탑재가 유력하다.
테슬라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확대 적용을 발표한 미국 시장은 낮은 가격보다는 주행거리가 더욱 중요한 시장이란 점에서도 국내 배터리사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미국은 넓은 영토로 인해 에너지밀도가 높은 삼원계 배터리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되고, 포드와 GM 등 미국 주요 완성차업체들은 한국·일본 배터리사들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다. 특히, 테슬라 전기차 상위모델인 롱레인지와 최상위 모델 퍼포먼스 레인지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원통형 배터리가 탑재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사들이 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을 검토하고 있는 건 맞지만, 주력은 여전히 삼원계 배터리”라며, “꾸준한 수요를 바탕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배터리업계에서는 저가형은 LFP 배터리가, 중고가형은 삼원계 배터리가 양분할 거란 사실은 예전부터 익히 예상한 사실”이라며, “특별한 이슈로 여겨지는 게 이상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번 테슬라의 리튬인산철 배터리 채용 확대 발표는 미국 시장을 겨냥했다기보다는 중국 시장 공략 차원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 시장을 통해 큰 수익을 낸 테슬라가 향후 중국 내 점유율 확대와 안정적 배터리 사업 추진을 위한 친중국 행보란 해석이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즈에 따르면 테슬라는 올해 3분기에만 전 세계에 24만1300대를 전기차를 판매했다. 이중 주력 모델은 중국 상해공장에서 생산하는 모델3·모델Y로 사상 최대 실적에 기여했다. 특히 올해 1~9월 중국에서 생산된 테슬라 전기차는 30만6600대로 전년 동기간 대비 251.1% 늘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번 테슬라의 LFP 배터리 채용 확대 결정으로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트렌드가 변화할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전고체 배터리가 나오기까지는 에너지밀도가 높은 삼원계 배터리가 대세일 것”이라며, “테슬라의 결정은 중국시장을 배려하는 차원으로 볼 수 있고, 확대 적용 모델도 보급형인 스탠다드에 한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배터리사들이 LFP 배터리 개발에 나선 것은 주력 배터리를 바꾼다는 의미보단 보급형 시장까지 공략 범위를 넓혀가겠단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LFP 배터리가 저렴한 가격과 화재 안전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화재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증권가 해석도 비슷했다. 김정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테슬라 스탠다드 레인지·롱레인지·퍼포먼스 레인지 중 가장 거리가 짧고 저렴한 스탠다드 모델에 LFP를 전량 적용한다는 것”이라며, “모든 전기차에 LFP를 탑재하겠다는 것도 아니어서 오히려 하이니켈 탑재 물량을 줄이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기존 시장에서 예상하던 대로 보급형 차량은 LFP 배터리, 중·고가 차량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하는 방향성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고가 전기차를 타깃으로 하는 국내 이차전지 업체들의 펀더멘털 훼손 요인는 아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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