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이벤트 캠퍼스(SEC)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기조연설에서 최근 탄소중립위원회가 상향 결정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 NDC)'를 발표했다.
이날 문 대통령이 발표한 탄소중립 감축안은 2018년 기준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40% 감축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 목표를 14%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문 대통령 자신도 이날 발표에서 “도전적 과제”라고 표현했다.
문 대통령은 영국을 떠나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어떤 일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결해야 하지만, 기후 위기는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면서 “우리 국민들과 기업의 열정, 상생의 마음을 믿고 탄소중립 계획을 제출했다”고 탄소중립 선언의 의미에 대해 밝혔다.
이에 대해 과학계와 산업계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에너지자원 빈국이자 고도 산업 국가인 한국에서 화석 연료를 전격 퇴출하는 게 쉽지 않음에도 충분한 의견 수렴과 내실 있는 검토 없이 국제사회에 성급하게 공언해 버린 것은 성급했다는 비판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 탄소중립위원회에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문 대통령이 이를 기후협약에서 공포한 건 너무 앞서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탄소중립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기술을 활용해 이를 추진할지 등 전반에 걸쳐 꼼꼼한 검토가 수반돼야 함에도 중간 과정이 상당히 생략됐고, 사회적 합의도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손 교수는 “탄소중립이 태양광 발전 몇 개 더 추가하고, 석탄발전을 줄이면 되는 거라고 단순히 생각하면 안 된다”며, “많은 에너지를 쓰는 포스코 등 대기업뿐 아니라 전 산업체에서 에너지를 쓰고 있어 향후 활용할 에너지를 어떤 가격에 어떻게 공급할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하고, 그런 과정이 축소됐다는 게 현 정권의 탄소중립 추진의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충분한 논의가 없이 무리한 계획을 국제사회에 공포해버리는 것은 스스로 발등을 찍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면서, “탄소중립을 할 때 하더라도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도가 보장되고, 기술 발달에 따라 유연성 있게 대처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국민과 기업의 열정을 믿고 탄소중립 계획을 제출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마라톤을 뛰는데 2시간에 주파하겠다고 하면 ‘열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1시간에 주파하겠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겠느냐”면서 “과학적으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가능한지를 다시 검토하고, 모든 걸 사실에 기초해 검증이 가능하도록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계도 정부의 일방적인 탄소중립안 추진에 대해 불만이 많다. 여러 경제계 단체가 수차례에 걸쳐 탄소중립안에 대한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반영되길 희망했지만, 최종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은 기대와 달랐다.
익명을 요구한 산업계 관계자는 “탄소중립 이슈가 떠오르기 이전부터 다수 기업은 친환경 추세를 읽고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고, 탄소중립 방향성에는 적극 공감한다”며, “그럼에도 너무 빠른 탄소감축안은 우리 경제와 산업에 득보다는 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마치 산업계의 입장을 경청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최종적으로 나온 결과를 보면 시늉에 불과한 게 아니냐”면서, “각 기업에서는 생존을 위해 꾸준한 탄소중립 노력을 펼치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마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불만을 늘어놓기보다는 선제적으로 탄소중립에 대응하고 적응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홍정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밝힌 2030 NDC는 모든 부문에 일률 적용된 게 아니다. 특히 산업부문 감축 비율(14.5%)은 수송(37.8%)·건물(32.8%)부문보다 적다”면서, “국내 산업구조와 발전 경로상 산업부문에서 그 이상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건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오히려 배려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계는 과거 탄소배출권 거래제(ETS) 도입 당시에도 지금처럼 천편일률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이미 도출된 탄소중립안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난색을 표명하기보다 정부의 규제와 지원에 따르면서 새롭게 변하는 경제 질서에 빠르게 적응하고, 경쟁력을 갖추려는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