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G화학 영업직군에서 일하는 30대 A 씨는 제품 영업을 위해 사무실에서 PC를 접속한다. 영업은 발로 뛰어야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 따라 디지털 영업으로 전환한 까닭이다. A씨는 “고객과 직접 마주하던 영업에서 디지털 영업으로 전환되면서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이제는 충분히 적응했고, 전화 문의나 이메일 요청을 통해 확인하는 업무 로드가 줄었다”고 했다.
#2. 경기도 일산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포스코 직원 B 씨는 최근에는 재택근무를 주로 하지만, 광화문 인근에서 외부 일정이 있는 때는 을지로에 마련된 회사 거점 오피스를 이용한다. 외부 일정을 마친 후 사무실이 있는 강남까지 가기가 부담스럽고, 출퇴근 거리도 더 멀기 때문이다. B 씨는 “광화문에서 업무를 보고 강남에 있는 사무실까지 가서 남은 일을 처리하기 번거로웠는데 인근에 마련된 공간이 생겨 편리하고, 집도 상대적으로 가깝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부터 이어진 코로나 장기화로 기업들이 적응을 넘어 생존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비대면을 위한 디지털 전환 추진과 함께 기업들의 비대면 중심 사내 문화도 점차 확산하고 있다.
가장 확연히 눈에 띄는 건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비대면 방식의 업무 전환이다. 과거에는 대면으로 했던 업무들이 디지털에 기반한 비대면 업무로 변하고 있다. 사내 회의부터 제품 판매를 위한 영업활동, 신입사원 교육까지 다양한 기업 업무가 현실 세계에서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코로나로 대면 영업 제한...디지털 기술 활용, 시장 공략
해외 고객사를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하는 수출 제조사들은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해외 출장을 가야 하는데 하늘길이 막혀 영업활동이 제약됐고,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코로나 이전처럼 편하게 고객사 관계자들을 만날 수 없다.
코로나가 처음 발생한 지난해에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적지 않은 피해가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국내 기업들은 코로나 위기를 기회 삼아 변화를 모색 중이다. 특히, IT기술을 적극 활용해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영업전략을 짜고 있다.
LG화학은 전 세계 화학업계 처음으로 디지털 영업방식을 채택했다. 기존에는 고객사와 직접 만나서 카달로그를 전달하고, 세부적인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의 영업이었으나, 이제는 고객사들이 LG화학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접속해 제품을 직접 보고, 재문의하거나 주문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LG화학은 자사가 생산하는 모든 석유화학 제품 정보를 지난 1일 디지털 영업 플랫폼 ‘LG Chem On’에 구축했다. 모든 영업활동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 고객사들의 접근성이 높아졌다.
LG화학 관계자는 “기존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전화와 이메일 등으로 B2B 영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디지털 영업방식이 추가되면서 영업사원들과 고객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 경과를 순서대로 볼 수 있게 됐다”면서, “특히 접근성이 좋아져 해외에서 LG화학을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5월 24일부터 28일까지 전 세계 30개 주요 고객사를 대상으로 웹 세미나를 열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해외 고객사 방문이 어려워진 가운데 삼성중공업이 비대면 마케팅을 기획했고, 최신 선박 기술과 친환경 트렌트를 소개하는 온라인 행사를 열고 영업활동을 펼쳤다.
해당 행사는 코로나로 최신 선박 정보를 공유받지 못했던 참여 고객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실제로 삼성중공업은 올해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의 수주 건수는 작년보다 크게 늘었다.
재택근무는 이젠 기본...‘거점 오피스’ 및 메타버스 활용
코로나 장기화로 기업의 업무 문화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한 공간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사업을 추진하고 업무를 나눠 처리했지만, 이제는 각자 공간에서 일을 처리하고, 종합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재택근무와 거점 오피스로 업무 효율성도 높이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달 1일 그룹사 직원들이 공유하는 거점 오피스를 여의도와 을지로 두 곳에 마련했다. 수도권 장거리 출퇴근 직원들의 피로도를 줄이고, 업무 효율화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은 높이되 최대한 한 공간에 모이지 않도록 해 코로나 확산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서다. 그룹사 직원들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전 예약·승인을 받아 거점 오피스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포스코를 비롯해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건설, 포스코ICT 등 총 4개 그룹사가 오피스 공간을 활용 중이다.
또한, 사람들이 모이는 기업 행사는 디지털 기반의 온라인 가상공간(메타버스)에서 열리고 있다. 신입사원 교육부터 취준생 멘토링 행사, 아이디어 공모전 등까지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현실 세계를 대체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7월 26일부터 8월 4일까지 올해 상반기 신입사원 연수 교육을 온라인 공간에서 진행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 내에 만들어진 가상 ‘SK무의연수원’에 신입사원들이 접속해 참여하는 방식으로 소양 교육뿐 아니라 퀴즈 풀이, 팀별 과제까지 전부 이곳에서 이뤄졌다. 일과 후에는 팀원들끼리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서 같이 각자 마련한 맥주를 나누는 등 소통의 시간을 보냈다.
LG화학과 금호석유화학도 올해부터 신입사원 교육을 메타버스에서 개최했고, GS칼텍스는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을 이용해 사내 비대면 방식의 해커톤을 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로 비대면 업무 환경이 조성됐지만, 잠식되더라도 이런 변화는 유지되지 않겠느냐”며 “비대면 업무와 디지털 전환이 효율성이 높아 어떤 형태로든 기업들이 계속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석유화학이나 철강 등 디지털 전환이나 메타버스 등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고 평가되던 B2B 기업들도 코로나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한 변화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면서 “국내외 전 산업에 걸쳐 디지털 전환은 가속화될 것”이라고 했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20세기 초반 스페인독감 이후 산업의 자동화가 빠르게 이뤄졌던 사례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전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면서 “코로나가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기업들은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한 디지털 방식을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다만, 거의 모든 업종이 디지털 플랫폼에 올라타면서 기업들은 과거 일부 보장받던 자신들의 시장까지도 무한경쟁을 통해 쟁취해야만 하는 상황이 초래됐다”며 “무한경쟁에 따라서 그전부터 진행됐던 독과점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기업들의 자체 경쟁력 확보가 기업 생존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