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지 않는다. 그러나 좋았던 옛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최근 온라인으로 진행한 석유 콘퍼런스에서 탄소중립 시대를 앞둔 석유산업을 이같이 진단했다.
이 원장은 “에너지 변혁 시대에 새로운 도전 요인이 많이 생기겠지만, 석유는 여전히 중요한 전략자원으로 가까운 미래에는 석유나 가스 부분의 비중이 급격히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황금기는 오지 않고, 지금보다 더 많은 규제에 대응하면서 생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코로나19가 해결되고 회복 국면에 돌입하면 단기적으로 석유산업은 상승할 것”이라며 “몇 번에 작은 호황기가 올 수 있다는 낙관적인 견해들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선진국을 중심으로 탈탄소, 탈화석연료 추세가 본격화되면서 수송 분야 석유 수요는 점차 줄어드는 반면, 탄소세 및 플라스틱세 도입, 배출권 거래제 확대 등으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탄소중립에 대응하기 위한 방향과 속도가 중요하다는 점도 이 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석유 수요 급감 시점을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석유 수요는 2025년까지 점차 상승한 뒤 기존과 비슷한 수준 수요를 2040년까지 유지한다. 반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석유 수요 급감의 시기는 더욱 당겨지고, 석유산업의 위기는 빠르게 도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OPEC과 IEA가 전망한 사이 어딘가에서 석유 수요가 결정될 걸로 보인다”면서 “고부가가치 영역을 중심으로 한 석유산업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인 생존 대안 마련을 위해서는 수소 및 해상 풍력,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등 사업으로 전환해야 하고, 시점 판단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발표자인 권오복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장도 당분간 석유 수요가 지속될 것이란 주장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탈화석연료 추세가 뚜렷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의 석유 수요는 이어져 급격한 시장 변화 가능성은 적다는 주장이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에너지 선진국들은 탄소중립 실천 의지가 강하고, 실제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작 탄소 배출량이 많은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은 탄소중립 시기를 2060년이나 2070년 이후로 보고 있다.
권 센터장은 “올해 유엔 기후협약 당사국총회에서도 석탄 사용에 대한 의견 불일치가 있었다”면서 “석탄 발전 비중이 낮은 유럽의 주요국은 석탄의 단계적 폐지, 퇴출을 주장했지만, 중국, 인도처럼 석탄 발전 비중이 60% 이상인 국가들은 단계적 감축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또한, “미중 대결 구도에서 경제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하고 있는 중국은 화석연료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2030년 이전에는 석유 소비 증가세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내년 국제유가 전망 발표도 있었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명예 선임 연구위원은 “내년 국제 유가는 석유시장의 공급 과잉 전환에 따라 하락세를 보이겠지만 연평균 가격은 2021년보다 다소 높은 수준에서 형성될 것”이라면서, “내년 두바이유 연평균 가격은 배럴당 72달러 수준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다만, 고유가·저유가 두 가지 시나리오를 언급하면서 국제유가의 상승 가능성도 점쳤다. 이 연구위원은 “고유가 시나리오대로 라면 석유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오펙플러스(OPEC+)가 계획보다 강화된 감산 정책을 시행할 시 유가는 추가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저유가 시나리오대로 진행된다면 석유 수요 회복이 지연되고 이란 핵합의(JCPOA) 복원에 따라 이란의 원요 수출이 재개될 경우 유가는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행사는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경제연구원, 대한석유협회이 공동 주최한 콘퍼런스로 탄소중립 시대 석유산업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석유산업 산·학·연 관계자 150여 명이 사전 등록했고,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됐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