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사들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생산능력 확보에 여념이 없지만 국내 배터리 투자는 미미한 상황이다. 글로벌 배터리 수요가 늘고 있지만, 생산능력 확대는 주로 해외고 국내는 수년째 비슷한 생산능력만을 유지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증가를 위해서라도 배터리 기업들의 국내 투자 유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지적이 나온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사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배터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북미·유럽·중국 등 해외 생산기지 생산능력 확대에 한창이다. 현지 업체와의 합작법인 설립 등과 자체 생산공장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미국의 경우 자국내 생산 배터리 외에는 관세 부과 정책을 펴고 있어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미국 현지에 생산거점을 마련한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120GWh의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올해 생산능력을 155GWh까지 늘리고, 2023년까지는 미국 오하이오주와 테네시주에 GM 합작공장 2곳, 한국·폴란드·중국 등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지속 확대해 260GWh 생산능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또한, 2025년까지 현대자동차그릅과 함께 인도네시아에 합작공장(10GWh)을 세우고, 미국 그린필드 단독 투자(70GWh)해 글로벌 생산능력을 크게 늘릴 계획이다.
SK온은 현재 충남 서산·헝가리 코마롬·중국 창저우 등 글로벌 시장에 연간 40GWh 수준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유럽·중국 등 해외 생산기지별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2030년까지 500GWh로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SDI는 국내 울산을 비롯해 헝가리, 중국, 미국 등 4곳에 생산거점을 두고 있다. 최근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와 2025년까지 미국에서 23GWh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배터리사들의 해외 대규모 투자는 꾸준하지만, 국내 배터리 생산 투자는 미미한 상태다. 해외 대규모 투자 계획은 줄을 잇는데, 국내 신규 공장 설립 및 투자 계획은 찾아보기 힘들다.
K-배터리사 국내 배터리 생산능력은 20~30GWh 규모로 추정된다. 생산공장 증설을 통해 일부 늘긴 했지만, 10년 전과 비교해도 큰 차가 없다. 국내 배터리 생산능력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은 오창공장에서 연간 18GWh 수준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다. SK온은 서산 1·2공장에서 4.7GWh 규모 생산능력을 갖췄고, 삼성SDI는 중대형 배터리를 울산공장서 생산하지만, 생산 규모는 밝히지 않고 있다.
배터리사, 국내보다 해외시장이 더욱 매력적
노동문제·규제도 국내 투자 망설이는 이유
‘국가전략기술’ 산업으로 격상될 정도로 국내서 크게 주목하고 지원하는 산업임에도 배터리 대규모 투자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는 소원하다.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늘려 생산능력을 확대할수록 양질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국내 투자는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을 배터리 기업들만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게 업계의 시선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특성상 더 나은 조건을 찾기 마련인데 국내는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라는 평가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일단 시장규모가 작고 입지 여건이 불리한 까닭에 국내 투자를 늘리기보다는 시장 접근성, 마케팅 효과 등 여건이 유리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면서 “글로벌 배터리 주요 시장은 유럽과 미국, 중국 등으로 배터리사들은 각 지역에 대규모 생산거점을 두고 있고, 해외 각국은 앞다퉈 자국 내 배터리 생산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그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업계는 국내 투자가 전혀 없진 않다고 설명하면서도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를 비롯해 노사문제, 각종 규제 등에 따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쉽게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사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 국내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는 높은 인건비도 큰 원인이나 잦은 파업, 법적 규제 등의 요인이 더욱 크다”면서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고, 수익을 내야 하는데 기업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와 기업활동을 촉진하는 방해하는 규제적 제도는 결국 국내 투자를 망설이게 한다”고 했다.
친기업적 국내 환경 조성해야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연계되는 정책 지원 필요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현실적이고 내실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입모아 말한다. 단순히 몇 푼 아낄 수 있는 재정적 혜택만으로는 해외로 나가려는 국내 기업들을 잡아두는 데는 한계가 있고, 기업들이 국내에 스스로 머물도록 유인하는 현실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글로벌 기업들이 내수를 포기하면서까지 해외로 나가려는 이유는 글로벌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기업 하기 어려운 국내 환경 때문인 까닭도 있다”며 “똑같은 조건이라면 해외 진출을 선호할 수밖에 없고, 정부는 기업의 노사문제, 규제 문제 등 실마리를 풀어줘 국내 투자를 유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는 “많은 정부가 정치적으로 급할 때마다 일자리 창출 정책을 내세웠지만, 대부분 지원을 끊으면 한순간에 사라질 실효성 없는 엉터리 일자리 정책 일색이었다”면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얼마를 투자해 일자리 몇 개를 만든다는 식의 공약적 정책보다는 해외로 빠져나가려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국내에 투자하고 국내서 생산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효율적인 투자겠구나라는 판단이 설 수 있는 제도 구축 및 정책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업을 지원하는 산업 정책도 단순한 접근법을 탈피해 면밀하고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의 제언도 잇따른다. 정부가 내년부터 전기차 보조금 낮추고 지원 대상 확대하는 정책 추진을 앞두고 있는데 이를 좀 더 세분화해 배터리 기업들이 국내 생산을 늘릴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적이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은 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설계될 필요가 있는데 국내 전기차 보조금 정책도 중국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기차·배터리 산업을 진작시키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보조금 제도부터 정밀하게 설계돼야 한다”면서 “특정 가격 이하 전기차 구매 시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단편적인 정책보다는 배터리의 주행거리, 국내 생산 배터리 탑재율 등 정밀하고 세밀한 정책 설계로 배터리사들이 국내 배터리 생산을 늘릴 만한 요인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