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앞에 강한 행정...‘사람’ 없는 사업 [철거되는 서울의 추억②]

약자 앞에 강한 행정...‘사람’ 없는 사업 [철거되는 서울의 추억②]

“해외 100년 넘는 가게 있어...우린 왜 없애나”
‘과거 현재 공존하는 개발’ 국민청원도
기재부·국토부 등 관련 부처와 철거 협의 안돼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치적쌓기용 비난도

기사승인 2021-12-30 06:15:02
“서울 사람들에게는 고향이 없다” 서울 골목길에 떠도는 쓸쓸한 농담이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명분 앞에 빠르게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대 성장 중심의 개발 정책이 시행되면서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생계유지 수단을 잃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거나 오래 살아온 이들은 당시 사라진 숱한 집과 가게들을 기억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개발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충정로 한편에서 49년간 서울 사람들의 추억이 되어주고 있는 철길 옆 한 떡볶이 가게가 행정편의를 앞세운 개발사업으로 인해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그 떡볶이, 우리는 계속 먹고싶다
② 약자 앞에 강한 행정...‘사람’ 없는 사업

철길 떡볶이집을 지켜달라는 국민청원.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누구를 위한 녹지사업인가…시민들은 “추억 부수지 마라, 그런 개발 필요 없다”

서대문구청의 사업 목적은 계속해서 바뀌어왔다. 당초 계획은 5000㎡(1512.5평)에 달하는 방음벽 마련이었다. 바로 옆에 기차가 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지 소유주인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기존 사업과 철도청의 거절로 인해 사업 면적은 3% 수준인 158㎡(48평)로 줄었다. 방음벽으로써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이에 구청은 현재 방음벽이 아닌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녹지를 조성해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간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에게 떡볶이집은 하나의 추억이기 때문이다. 오랜 추억이 담긴 가게를 강제 철거하고 사전협의 없이 만들어지는 녹지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

철길 떡볶이집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윤자(58)씨는 “그 녹지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이 떡볶이 가게에는 의미와 추억이 있다. 엄마 아빠를 따라오던 아이가 성장해서 자신의 자녀와 함께 올 수 있는, 세대가 추억을 공유하는 그런 공간”이라며 “일본이나 해외에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가게들이 있어서 세대가 기억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왜 그런 곳들을 없애나가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철길 떡볶이를 구하기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진행되기도 했다. 인근 거주자들과 직장인, 단골손님 등이 참여해 636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명의 동의를 얻는 수준까지 확산되지는 못하고 끝났지만, 떡볶이 가게를 지켜달라는 시민 수백명의 마음은 여전히 간절하다. 시민들이 원하는 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수 있는 개발’이다. 웃음과 추억이 담긴 떡볶이집을 강제로 부수지 않고도 개발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충정로 인근에서 사업체를 운영 중인 이원구(58)씨는 “서울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고향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개발하더라도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장소는 보존해가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철길 떡볶이가 바로 보존해야 할 곳”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철길 옆 떡볶이 가게.   사진=임형택 기자

떡볶이집은 철거 강행, 정부 건물은 ‘눈치 보기’…약자 앞에 강한 서대문구청

축소된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 있어 부당한 정황도 다수 발견됐다. 우선 정부와 개인을 대하는 태도에 차별이 있었다. 서대문구청의 축소 전 사업 면적에는 떡볶이 가게와 동아일보 주차장 부지, 기획재정부 건물 등이 포함돼 있었다. 기재부가 건물 철거 및 부지사용 등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혔고 구청은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떡볶이집의 경우 구청은 사장님이 반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감정평가를 진행하는 등 현재까지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밀려날 상황에 처한 떡볶이집은 수년째 생존권과 영업권, 주거권을 호소하며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철길 떡볶이집 변호를 맡은 ‘법률사무소 해내’의 한용현 변호사는 “사업 추진 면적 중 철도 복선화공사로 서대문구청이 국토교통부 철도부지를 무상으로 얻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기재부 부지도 협의가 안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철길 떡볶이에 대해서만 무리하게 철거를 추진하고 있다. 공익을 위해 불가피한 상황도 아니고, 오로지 사업권한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며 “특히 기재부 건물을 제외한 것은 불평등하다. 제외한 건물은 떡볶이 가게와 같이 철도 근처에 위치해 있고, 사용하지도 않는 공실”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서대문구청은 떡볶이집 부지에 대한 정식 사용 권한조차도 제대로 획득하지 않은 상태다. 소유권의 경우 건물(지상권)은 해당 떡볶이집에, 토지는 국토부에 있다. 이와 관련 국토부 측은 “해당 토지는 국토부 소유의 행정재산이다. 서대문구에서 사용하려면 사용에 대한 사업 승인을 먼저 받아야 한다”면서 “구청은 기획재정부와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용도폐지 신청과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측은 서대문구에 용도폐지 승인을 내준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공사 관계자는 “용도폐지가 안 돼있으며, 우리 쪽으로 인계되어 넘어온 것도 없다. 해당 지역은 정비구역인데, (서대문구청이) 사업을 하려면 용도폐지가 되고 나서야 토지 매입을 하거나 양도를 받는 등의 처리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세금 낭비 우려도 제기된다. 서대문구청이 녹지를 조성한다고 하더라도 한시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해당 부지는 국토부가 추진하는 국가철도망 구축 사업에 포함돼 있다. 법률상 해당 토지의 사업추진 권한은 국토부가 우위에 있다. 사업계획의 중복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공사가 두번 이상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대문구청. 쿠키뉴스 DB

시민 반대에도 사업강행…구청장 공적 늘리기용 탁상행정 의심


사업 절차상 불합리와 시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서대문구청은 녹지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의 임기 내 공적을 늘리기 위한 탁상행정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녹지조성 효과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받은 것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구청 판단으로) 어느 정도 녹지기능을 하도록 점진적으로 늘려가려는 것이다. 혐오시설을 설치하는 거라면 공청회를 하겠지만, 이 사업에 대해서는 굳이 주민 의견을 수렴할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사업 진행에서 정부와 개인 대우에 차별 소지가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기재부 측은 무상 사용 요청을 거부했고, (구두상으로 부르는) 토지보상금과 건물 보상금이 어마어마하더라. 그래서 기재부는 제외하고, 떡볶이 가게 쪽만 감정평가를 진행해서 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국토부 소유 부지임에도 정식사용 권한을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우리는 서울시로부터 사업 시행 권한을 위임받았고. 해당 부지 도시계획 목표가 녹지로 돼있기 때문에 그대로 녹지 조성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 우리가 알기로는 용도폐지가 필수사항이 아니다. 필수대상이면 신청을 했을 것이다. 세부적인 것에 대한 판단은 법원 판단을 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안세진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

지영의 기자, 안세진 기자
ysyu1015@kukinews.com
지영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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