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한해도 거르지 않고 전북 전주시를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천사도시로 만든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22년째 이어졌다.
29일 전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5분 노송동 주민센터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매년 연말이면 중년남성의 목소리로 찾아오는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아무도 모르게 거액의 성금을 살포시 두고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천사는 전화를 통해 “성산교회 오르막길 부근에 있는 트럭 적재함 위에 박스를 놓았습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주세요”라고 말했다.
천사의 전화를 받은 최영면 노송동주민센터 복지도우미는 “목소리로 보아 40대 남자로 보였다”면서 “미처 감사의 뜻을 표현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중년 남자와 통화내용에 따라 확인해보니 성산교회 앞 트럭에 박스가 놓여 있었고, 상자에는 5만원권 지폐 다발과 동전이 들어있는 돼지저금통 1개가 들어 있었다. 천사가 남몰래 두고 간 금액은 모두 7009만 4960원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로 22년째 총 23차례에 걸쳐 몰래 보내 준 성금은 총 8억 872만 8110원에 달한다.
이날 천사가 남긴 편지로 보이는 A4용지에는 컴퓨터로 타이핑한 글씨체로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시고 따뜻한 한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얼굴 없는 천사가 보내준 이 성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역의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는 지난 2000년 4월 초등학생을 통해 58만 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중노2동 주민센터에 보낸 뒤 홀연히 사라져 불리게 된 이름으로, 해마다 성탄절을 전후로 남몰래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전주는 해마다 이어진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과 그의 행적을 쫓아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에 함께하는 천하는 천사시민들이 늘면서 ‘천사도시’로 불려왔다.
노송동 일대 주민들은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고 그의 선행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숫자 천사(1004)를 연상할 수 있는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하고, 주변 6개동이 함께 천사축제를 열어 불우이웃을 돕는 나눔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10년 1월에는 얼굴 없는 천사의 숨은 뜻을 기리고 아름다운 기부문화가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노송동 주민센터 화단에 ‘당신은 어둠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얼굴 없는 천사의 비’를 세우기도 했다.
2015년 12월에는 노송동 주민센터 주변에 기부천사 쉼터를 조성, 옆 대로는 ‘천사의 길’, 인근 주변은 ‘천사마을’로 이름이 붙여졌다. 2017년에는 천사의 길을 따라 천사벽화가 그려졌고, 2018년에는 동 주민센터 입구에 천사기념관이 조성됐다.
시는 매년 연말 거액의 성금을 놓고 간 얼굴 없는 천사의 성금으로 생활이 어려운 6158여 세대에 현금과 연탄, 쌀 등을 전달했고, 노송동 저소득가정 초·중·고교 자녀에게는 장학금도 수여했다.
시 관계자는 “얼굴 없는 천사와 천사시민들이 베푼 온정과 후원의 손길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소중히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전주=박용주 기자 yzzpar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