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 30일 녹색금융 활성화를 촉진하고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2년에 걸쳐 마련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지침서’를 발표했다. K-택소노미에는 현재 논란이 되는 원자력 발전(원전)은 포함되지 않았고, 탄소배출이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은 포함됐다.
시민·환경단체와 원자력업계 모두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두 진영이 지적하는 대목은 다르지만, 너무 성급한 결정이라는 데는 뜻을 같이했다.
시민·환경단체는 탄소 배출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녹색경제활동에 포함된 사실을 비판했다. 원전과 함께 퇴출해야 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그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녹색금융지원을 받도록 한 정부 조치는 잘못됐고, 신재생에너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쓰일 순 있지만, 녹색금융지원 혜택 부여는 너무 나갔다는 지적이다
임성희 녹색연합 에너지전환팀장은 “액화천연가스(LNG)가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가교역할을 하는 건 분명하지만, 결국 온실가스·미세먼지를 배출한다”면서,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녹색금융 지원은 이치에 어긋난다. 탄소중립 실현을 방해할 뿐이다”고 말했다.
원자력 관련 학계와 산업계에서도 이번 정부의 택소노미 발표가 시의적절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이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은 시점에 무리하게 명분만을 앞세워 실리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탈원전 정책을 유지한 정부가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 몽니를 부리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공학부 교수는 “유럽연합이 그린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할 가능성이 큰데 실리를 포기하면서 까지 굳이 먼저 발표하는 정부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유럽연합이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할지 결정한 뒤 다시 수정한다는 게 더욱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력 대선후보들이 탈원전 정책의 원점 재검토하겠다고 표명했음에도 원전을 뺀 K-택소노미는 차기 정부 정책을 방해하겠다는 의도로 비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환경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라서 K-택소노미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NDC안에 신규원전 건설 계획은 없어 친환경 산업에 포함하지 않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은 한시적으로만 녹색경제활동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다만, 향후 국민 여론과 국제동향에 따라서 조정될 수 있다면서 여지를 남겼다.
정부의 이번 K-택소노미 발표에 대해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한 학계 주장도 눈길을 끈다. 녹색금융 기준 지침이 되는 만큼 녹색경제활동 지정에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탄소중립 정책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변동 가능해 큰 의미 없다는 주장이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K-택소노미는 녹색금융 기준 가이드라인으로 권위와 신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어 처음 정할 때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면서, “논쟁 소지가 있는 원전·액화천연가스(LNG) 등을 친환경 산업에 포함하면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유럽연합이 발표한 그린 택소노미에는 원전과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다시 포함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면서, “K-택소노미는 고정불변이 아니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법안도 아니다. 정부 정책이 바뀌면 언제든지 보완·개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K-택소노미 주목 이유는...녹색금융 투자 기준
전 산업계와 학계가 K-택소노미에 주목하는 이유는 녹색금융 투자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K-택소노미는 어떠한 산업이 친환경 산업인지를 분류하는 사실상 기준으로 금융·투자사의 녹색 채권 발행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적인 친환경 흐름에 따라 금융·투자사들은 친환경을 강조하는 기업에게만 금융 혜택을 주는 가운데 K-택소노미 포함 여부는 투자 재원 확보 차원에서 중요하다.
정부는 K-택소노미는 친환경 산업 녹색경제활동 자금조달을 쉽게 하기 위한 목적이고, 포함되지 않은 산업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사실상 녹색금융 투자가 이뤄질 거란 게 금융업계 관측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친환경을 포함한 ESG 관련 지표들이 난립하던 상황에서 정부가 만든 명확한 기준이 나오면 금융·투자사들이 관련 자료를 사실상 활용할 것”이면서, “며칠 전 발표됐기 때문에 당장 어떤 식으로 적용할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녹색금융을 위한 지표로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인 영향은 없겠지만, 현 K-택소노미 기준이 오랜 기간 유지된다면 녹색경제활동에 포함되지 않은 원전 분야는 금융지원이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