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함께 흐른 쇳물...‘제철보국’ 포항1고로 퇴장

대한민국과 함께 흐른 쇳물...‘제철보국’ 포항1고로 퇴장

제철로 번 재원, 다시 국내산업 투자
전후방 산업 성장 기여...산업계 맏형

기사승인 2022-01-05 06:00:21
지난달 29일 종풍한 포항1고로.  포스코

“포항1고로가 없었다면 한국경제 발전과 성장은 한참 뒤에나 이뤄졌을 겁니다.”

지난달 29일 종풍한 포항1고로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한국경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산업화 배경에는 제철산업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 제철산업 시작은 포항1고로였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생산 3요소 중 가진 거라고는 노동력뿐이었다. 투자를 위한 자본이 없었고, 산업을 지탱하는 석유·석탄 등 핵심 자원도 풍족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는 좌절의 상황에서 한국경제를 일으킨 것은 제철이었다. 아무 기반이 없는 가운데 국가 재건과 경제 부흥을 위해서는 종합제철 건설이 중요한 과제였다. 시대가 변해 현재는 철강 대체재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산업혁명 이후부터 20세기는 철이 모든 산업의 근간이자 뒷배였다.

제철사업은 자체만으로도 고부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산업이지만, 철을 소재로 한 전후방 산업에도 중요한 기간산업이다. 반도체 없이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IT·전자산업을 생각할 수 없듯 당시 철은 제조업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소재였다. 대부분 외국서 수입해오던 철을 국내서 자립 생산하게 되면서 국내 제조업은 비약적인 발적을 이뤘다. 철 생산능력을 토대로 국내 조선·자동차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제철산업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은 다시 제철시설을 포함한 다수 기간산업에 다시 투자됐다. 

안중호 서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철은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였다”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제철 부흥으로 한국경제는 비약적인 발전과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포항1고로의 퇴장은 철강업을 중심으로 한 찬란한 제조업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발전은 각국의 비교우위 상품을 매매하면서 이뤄지는데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값싼 노동력뿐이었다”며 “빌린 차관과 외국서 배운 기술로 종합제철을 완성하면서 실질적인 산업화시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철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으로 국내에 추가 기간산업 투자가 이어졌고, 조선업과 초대형설비산업 등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 작업자가 지난 29일 종풍전 마지막 출선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코

간절함이 이뤄낸 제철보국
박태준 회장, 자금 및 기술 확보 위한 수차례 일본 방문

철강업은 제조업이 중심이던 20세기에 중요한 핵심 산업이었다. 이를 알고 있던 대한민국 정부는 꾸준히 철강업 부흥을 꿈꿨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철강업 재건 움직임을 보였고, 계속해 시도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철을 만드는 시설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군수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져 산업용 전용은 어려웠고, 그나마 있는 시설들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대부분 파괴됐다.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철강업 재건계획’을 입안해 철강업 복구 의지를 구체화했으나, 자본 조달 어려움으로 계획이 무산됐고, 2공화국과 3공화국에서도 꾸준히 제철소 건설 계획을 세웠지만, 매번 난관에 부딪치면서 좌초됐다. 

각고의 노력으로 1968년 4월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설립됐다. 회사는 설립됐지만 쇳물을 만들어내는 고로 건설까지도 험난한 여정이 남았다. 대규모 재원이 필요했는데 당시 대한민국은 경공업 중심으로 수출을 영위하던 상황에 투자 재원이 없었다. 세계은행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기 일쑤였고, 결국 한·일 국교 정상화 조치에 따라 일본서 받은 대일청구권자금이 종합제철 종자돈이 됐다. 

대일청구권자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도 일본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한일 양국은 농림수산 부문에 주로 투자하기로 합의했는데 이중 일부를 종합제철 건설 자금으로 용도 변경이 필요했다. 일본 측은 용도 전용은 어렵다는 입장을 냈지만,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여러 차례 일본을 찾아 물밑협상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제철사 관계자들을 만나 관련 기술 제공 및 협력도 이끌어냈다.

포항제철 설립을 주도한 박태준 포스코 회장과 창립멤버들은 어렵게 마련한 자금과 기술 협력의 역사를 알고 있었기에 1고로 건설에 목숨을 걸었다. 이때 등장하는 일화가 일명 '우향우 정신이다. 박 회장은 1고로 건립을 앞두고 직원들에게 “모래바람 매서운 바닷가 허허벌판, 가진 건 종합제철 건립 성공으로 자립경제를 선도해야 한다는 제철보국의 의지뿐”이라면서 “선조의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포항 1기 설비 종합 착공 버튼을 누르는 박태준 포스코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 김학렬 부총리.  포스코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철산업에 대한 투자는 개도국이 시도하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이뤄냈고 오랫동안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됐다”며 “당시 사진을 보면 기필코 이뤄내겠다는 박태준 회장의 결기에 찬 모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십 년간 노력의 첫 결실이 포항1고로라는 측면에서 이번 종풍은 한국경제와 산업계에게도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고 역설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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