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불허 결정을 내린다는 현지 매체 보도가 나온 가운데 국내 반독점 심사를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6개 이해당사국 중 한 국가라도 인수합병 불허 결정 시 인수합병 자체가 무산되는데 공정위는 3년 가까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고, 눈치 보기에 급급한 나머지 산업 경쟁력 훼손을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 독과점 당국은 이른 시일 내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심사에 대한 불허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두 대형 조선사 인수합병 시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건조 시장에서 점유율이 60%에 이르고, 머스크, MSC를 비롯한 유럽 해운사들의 가격 협상력이 떨어질 우려를 보이면서 불허 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 결합심사는 국내 공정위뿐 아니라 해외 이해당사자국들의 승인을 모두 받아야 한다. 카자흐스탄(2019.10), 싱가포르(2020.8), 중국(2020.12)은 조건 없는 승인을 했고, 한국·유럽연합(EU)·일본은 심사를 마치지 않은 상태다. 알려진 대로 유럽연합이 인수합병을 불허할 경우는 한국과 일본 반독점 당국 판단에 상관없이 인수합병 자체는 무산된다.
업계에서는 너무 길어진 인수합병 심사 기간에 따라 산업 경쟁력이 크게 훼손됐다면서 판단을 미뤄온 공정위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공정위가 기업 인수합병을 심사하는 본연의 업무에 따라 조속한 판단을 내려줬다면 산업계도 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했을 텐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판단을 지연해왔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수주가 이어지면서 호황을 맞고 있는데 인수합병이라는 불안정한 지위가 계속되다 보면 경영 전반에 있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대우조선해양이 경쟁사 대비 불리한 경쟁을 펼쳤던 건 사실이고, 공정위 판단이 먼저 나왔다면 불안정한 상황은 지금보다 더 빨리 해소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간 인수합병 독과점 우려가 있다면 공정위가 불허하면 될 일을 3년이나 넘게 끌었다”며 “산업계를 생각했다면 유럽연합 판단을 기다리지 말고 서둘러 판단을 내렸어도 됐는데 정치권 눈치 보기 급급했던 게 아니었겠느냐”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조선사 경쟁력을 위해서는 인수합병이 필요했다면서 인수 불발 피해는 고스란히 대우조선해양에게 돌아갈 것으로 봤다. 인수합병 시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에 유상증자를 통해 1조500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수합병이 무산되면 대우조선해양에는 자금이 투입되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조선업 인수합병 추진 목적 중 하나는 과당 경쟁, 중복 투자 등 출혈 경쟁을 줄여 조선산업을 재편하자는 의도였다”며 “인수합병이 무산되면 3년간 시간을 허비한 대우조선해양은 다시 주인 찾기에 나서야 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현대중공업그룹은 인수합병 후 유상증자를 위해 마련해둔 자금을 새로운 사업 재원으로 활용하면 돼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승우 SK증권 연구원은 “EU의 기업결합심사 결과가 무엇이든 한국조선해양엔 악재가 아니다”며 “미승인 시 대우조선해양 1조5000억원 증자 계획이 철회돼 현금을 고스란히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학계서는 유럽연합 인수합병 불허 결정 가능성에 대해 반독점 차단 의도보다는 자국 이익을 위한 판단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럽연합이 인수합병을 불허하려는 모습은 실질적인 반독점 차단 의도보다는 자국 기업들을 보호하는 측면이 크다고 봐야 한다”며 “초대형 선사들이 많이 있는 유럽 입장에서는 규모가 큰 조선회사가 출현은 부담이 되고, 이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