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기반 중후장대 기업들이 새해부터 ‘안전’을 강조하면서 중대 산업재해 감축에 집중하고 있다. 이달 말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1호 처벌 대상이라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철강사를 비롯한 조선·화학 중후장대 기업들은 새해부터 안전 관련 조직을 신설·개편하거나 전문인력 확충에 나서고 있다.
오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사업장 내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자가 형사 처벌받을 수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했다고 무조건 처벌받지는 않지만, 경영자의 충분한 안전 관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명될 경우에는 처벌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중대재해 발생률이 다른 업권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중후장대 기업들은 앞다퉈 안전관리에 힘쓰는 모습이다.
철강기업들은 임직원들에게 전하는 신년사에서 '안전'을 곳곳에 담아내며 강조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모든 업무 현장에서 안전을 최우선 핵심 가치이자 기업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면서 “현장 불안전한 상태를 발굴·개선하고, 위험성 평가와 자가 안전 감사를 통해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자율적 안전문화를 정착하자”고 임직원을 독려했다.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은 “올해부터 적용되는 중대재해법의 시행을 차치하더라도 이제 안전은 기업경영의 필수 요소를 넘어 범사회적인 핵심 덕목으로 그 의미와 가치가 확대됐다”며 “사업장은 물론,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안전 가치를 되새기고, 내 안전을 넘어 동료의 안전까지 살피고 전도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율안전문화를 체화해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앞서 안전 관리 부문을 강화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3월에는 철강부문장 직속 안전환경본부를 신설해 안전 관리에 중점관리를 해왔고, 현대제철은 지난해 8월 안전·보건 분야 컨트롤타워인 ‘안전보건총괄’ 부서를 대표이사 직속으로 신설했다.
고중량·고지대 작업이 많은 조선업 상황도 비슷하다. 조선사들은 최근 수주물량이 늘면서 작업량도 크게 늘자 평소보다 안전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는 별개로 사업장 내서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막아 안전한 사업장 구축에 힘쓰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안전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실천하기 위한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수립 운영 중이다. 임원·부서장들은 담당 작업장 외에도 사고 예방을 위한 교차 안전점검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9월에도 협력업체 직원이 굴삭기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 발생하면서 더욱 안전 관리 및 예방에 신경 쓰는 모습이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안전 관리 직원을 채용하는 등 안전 관리에 여념 없다.
기업들은 안전 관리 및 예방 대책에 나서고 있지만, 중대재해 발생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동안 발생한 중대재해 대부분이 안전 관리 부재보다는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가 다수라는 이유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보완입법을 요구하고 있다. 오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하겠지만, 개선돼야 하는 규정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산업재해 문제를 경영자 처벌로 해결하는 건 올바른 접근방식이 아니다”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과잉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면 기업인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리고 산재예방 효과는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는 해석하기 애매한 규정들이 있는 만큼 법 시행 이후라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대기업보다 50인 이상 중소기업 처벌 피해가 우려된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유예 규정이 적용돼 당장 적용되진 않지만, 50인 이상 중소기업에는 법이 적용돼 제1호 처벌 대상 가능성이 크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자금력 등 이유로 체계적인 안전 대책 수립 자체가 어려운 데다가 법적 자문을 구할 전문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이상국 공공노무법인 노무사는 “국내 산업 중 95%가량이 중소기업으로 구성됐고, 산업재해 중 약 80% 이상이 중소기업에서 발생한다”며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의 중대재해 예방대책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