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기업결합 심사 불허 결정에 따라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이 무산됐다. 현대중공업그룹은 EU 결정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심사 자료가 넘어오면 면밀히 검토해 향후 방향성을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국내 조선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양사 인수합병을 밀었던 정부는 인수합병 실패에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위한 주인 찾기에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EU 위원회는 13일(현지시간)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불허 결정을 내렸다. 통합회사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 독점 지위를 가지면 공정경쟁을 저해할 거란 이유에서다.
EU는 양사 합병으로 60% 이상 시장 점유율을 가지면 LNG 운반선 가격과 더불어 LNG 가격까지 올릴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경쟁 담당 EU 집행위원은 “LNG는 유럽 에너지원 다변화에 기여하는 에너지고 LNG 운반선은 LNG 공급에 필수적이다”며 “두 회사가 합병하면 에너지 공급을 위해 소비자들이 더 높은 비용을 치러야 할 걸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유럽연합 불허 발표 직후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다른 심사국들은 시장 독과점 가능성을 낮게 보고 인수합병을 승인했음에도, 유럽연합은 실제 현실 여건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입장문을 통해 “EU 공정위에서 우려를 표명한 LNG선 시장의 경우, 유효한 경쟁자들이 시장에 존재하고, “핵심 LNG화물창 기술은 유럽사들이 독점권을 갖고 있다”며 “해당 기술 라이선스를 보유한 조선사만 전 세계적으로 30개사 이상으로 언제든 입찰 경쟁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선시장은 단순히 시장 점유율만으로 지배력을 평가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2년간 설명해 왔음에도 불허 결정을 내린 데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회사 측은 다음주 중 심사 결과지를 수령한 후 면밀히 분석하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유럽연합의 불허 결정으로 나머지 이해당사국의 기업결합 승인은 무의미해졌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산업은행과 체결한 본계약 선결 조건이 6개 경쟁 당국 승인이었는데 한 국가라도 미승인 시에는 계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해당사자국 중 카자흐스탄(2019.10), 싱가포르(2020.8), 중국(2020.12)은 불공정 우려가 전혀 없다면서 조건 없는 승인을 진작 내렸고, 한국·유럽연합(EU)·일본은 최근까지 심사를 마치지 않았었다.
계약 성립 자체가 불가능해지면서 현대중공업은 이날 국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던 기업결합 신고를 철회했다. 공정위는 신고 철회에 따라 계약 종결을 확인하는 대로 규정에 따라 심사 절차 종료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당 사안에) 독과점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심사관이 심사보고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신고 철회가 없으면 절차에 따라 심의하는 수밖에 없다”며 “통상 심사보고서가 위원회에 상정되면 불공정 여부를 심의하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데 현대중공업 측이 신고를 철회하면서 심의 자체는 열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두 기업의 인수합병을 추진했던 정부와 관계기관은 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추진해온 조선산업 여건 개선을 최대한 활용해 국내 조선산업 경쟁력 제고와 대우조선 정상화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대우조선의 근본적 정상화를 위해 ‘민간 주인 찾기’가 필요하다는 게 일관된 정부 입장”이라며 “외부전문기관의 컨설팅 등을 바탕으로 산업은행 중심으로 대우조선 경쟁력 강화방안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제통상법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의 불허 결정에 대한 항소는 가능하지만, 실효성은 없다고 봤다.
김기영 조선대 공공인재법학과 교수는 “과거 미국 보잉과 맥도널 더글러스(MD) 인수합병 시 EU가 불허해 갈등을 빚은 적이 있지만, 이 당시도 법이 아닌 정치외교로 풀었다”며, “대외적으로 구속력 있는 국제통상 독과점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사법재판소에 항소해 다툴 수 있지만, 오랜 시일이 걸리는 만큼 채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