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 1호 피했지만...멈춰선 공장들

중대재해처벌 1호 피했지만...멈춰선 공장들

포스코, 설 연휴 전후 코크스 공사현장 작업 중단
현대重, 안전대책 원점 재검토...조직개편 단행
공공기관 뒤늦게 중대재해 계획 수립 착수

기사승인 2022-02-04 06:10:06
중대재해처벌법 가이드북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만에 노동자가 사망자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서 언제든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긴장감이 산업계를 감돌고 있다. 업종 특성상 산업재해가 빈번히 발생하는 제조업 기업 중 일부는 중대재해 발생 우려가 큰 대규모 공사를 중단했고, 다수 기업은 숨죽이는 가운데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재해율이 높은 중후장대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앞서 안전 전담 조직을 신설·강화하는 등 만반의 준비에 나섰지만, 의도와 달리 중대재해가 발생하자 당황하는 모습이다. 일부 중후장대 기업은 재해 우려가 큰 대형 공사작업은 일단 중단했다.

포스코는 설 연휴 전후를 안전점검기간으로 정하고, 사업장 내 대형 공사들을 중단했다. 철강 제품 생산을 위한 기본 시설은 가동하지만, 당장 영향을 주지 않는 시설들은 멈춰 세웠다. 올해 12월까지 완공 목표인 포항제철소 6번째 코크스공장 건립 공사는 중대재해처벌법 며칠 전 이미 중단됐다.

연초 끼임 사고로 사망자가 나온 현대중공업은 안전대책을 원점 재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기존 안전경영실을 안전기획실로 변경하고, 전사 최고안전책임자(CSO)인 안전기획실장에 현 경영지원본부장인 노진율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선임했다. 실질적인 전사 안전 기능을 총괄하기 위한 차원의 조직개편으로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또 안전부문 인력을 20% 증원하고, 현장 유해요인 확인 및 개선을 위한 신규 위험성 평가시스템 구축, 고위험 공정 종사자 대상 체험․실습형 안전교육 강화 등 조치에 나선다.

삼성전자는 사내 공지를 통해 사업장 내 보행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 등 '5대 안전 규정'을 의무화했다. 과거 권고 수준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시점에 맞춰 의무 규정으로 강화했다. 기본적인 안전 수칙부터 철저히 지키면서 안전한 사업장 만들기 분위기 조성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5대 안전 규정은 △보행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 △보행 중 무단횡단 금지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 △운전 중 과속 금지·사내 제한 속도 준수  △자전거 이용 중 헬멧 착용 등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취지는 ‘예방’...기업 ‘처벌 피하기’ 급급
노동계 “잇따른 기업 지주사 전환 시도는 중대재해처벌 피하기 꼼수”

안전대책을 수립했음에도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사고가 끊이질 않자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본래 취지인 예방보다 처벌 피하기에 급급하다. 어떠한 준비를 해도 중대재해 산업현장서 중대재해 사고는 발생하기 마련이고, 사고가 날 때마다 처벌 걱정에 나서야 할 상황이 되자 처벌을 피할 수 있는 방법 찾기에 나섰다. 이미 여러 기업이 유명 로펌 등을 통해 관련 컨설팅을 마친 상태로 전해진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안전대책을 백방 세워도 사고는 언제든 일어난다. 막상 중대재해 조사에 착수하면 어느 한 곳 이상은 지적 사항이 나오기 마련이다”며 “그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예방보다 처벌을 위한 법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을 경영해야 하는데 경영자 공백 사태가 계속된다면 사업 연속성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노동계에서는 최근 기업들이 이례적으로 연달아 지주사 전환에 나서자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시점에 맞춰 이례적으로 연달아 다수 기업이 물적분할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계자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면, 자회사 계열사 대표가 경영책임자가 되어 기존 그룹 회장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처벌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며 “그동안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왜 하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여러기업들이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는지 의심스럽다. 이것이 기업들이 중대재해 예방을 대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은 민간 기업 외에도 50인 이상 전 사업장에 적용된다. 따라서 지자체를 포함한 공공기관도 법 적용 사업장이다.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공공기관장 또는 자치단체장이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은 이제야 중대재해처벌법 대비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일부 공공기관은 발 빠르게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해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적용까지 마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법 해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다. 일부 공공기관은 중앙부처에서 내려준 지침을 일부 수정해 다시 공유하는 수준에 그친다. 제조업보다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낮지만 이제야 대비에 나섰다는 것에 관련업계는 납득하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기초지방자치단체 건설과 공무원은 “지난달 중앙부처에서 관련 지침을 내려받긴 했지만, 현장에 따라 명확한 법률 해석 여지가 있어 아직 내부 검토 중이다”며 “조만간 관련 안전대책 지침을 마련하고 각 현장에 관련 지침을 내릴 예정이다.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산업재해 컨설팅에 나선 한 전문가는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 및 유해 위험요인 점검이 가장 핵심 과제인데 막상 컨설팅에 나서면 이를 담당하는 안전관리자 또는 이해하는 이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며 “안전보건 기준서를 만드는 것보다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안전에 관심을 갖고, 안전보건을 들여다보고 개선해나가는 실질적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시행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개정 요구는 빗발치고 있다. 방향성은 다르지만, 재계와 노동계 모두 조속한 시행법 개정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재계는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애매한 법 규정을 명확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노동계는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법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 내고 있다.

또 전문가들도 이미 시행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엄격히 준수해야 하지만, 산업현장과 괴리가 있는 만큼 반드시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일각에서는 위헌 가능성까지 언급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타인의 행위에 대해서 형사책임을 묻고 있는데 이는 형사법상 자기책임의 원칙에 반한다”며 “위헌 소지가 크고, 현장에서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만큼 빠르게 법을 고칠수록 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국 숭실대 안전환경융학공학과 교수는 “같은 유해 위험요인을 대상으로 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규율 방법이 다르거나 중복돼 법 시행상 제도적 한계성이 있다”며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등 예방대책 수립을 위해서는 면밀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중소기업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안전보건의무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은 수용하기 힘든 강제수단이다”며 “지킬 수 없으니 위법인 줄 알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기만 기대한다는 중소기업 대표의 말을 들으면 난감하기까지 하다”고 지적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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