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없는 청년 세대론 [쿠키청년기자단]

청년 없는 청년 세대론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2-03-08 06:20:02
픽사베이
“오늘의 시대는 실패했다. 세대가 아닌 시대를 교체하라”

지난해 4월, 21개 청년-학생단체가 모여 발표한 청년 시국선언문의 제목이다. 이들은 “세대론은 청년 세대의 문제를 담아내고 있지 않다”라며 무의미한 세대 담론 대신 실제 청년의 삶에 주목할 것을 호소했다. 약 1년이 지났지만, 눈먼 세대론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사회는 청년 대신 ‘OO 세대’를 찾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 77만원 세대, N포 세대, MZ 세대, 에코 세대, 에코붐 세대, 무민 세대, 달관 세대, S 세대, I 세대, G세대, C 세대, 절벽 세대, 실크 세대···.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8090 청년들을 분류하는 세대 용어다. 88만원 세대는 지난 2007년 고용 위기를 맞이한 80년대생을 말한다. 이들을 잇는 77만원 세대는 고용불안에 평균소득이 77만원으로 내려간 최근의 90년대생이다. 유행처럼 번진 MZ 세대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한다.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구분법도 있다. 무민 세대는 없음을 뜻하는 한자어 무(無)와 의미(mean)를 뜻하는 영단어를 합친 용어다. 경쟁 사회를 벗어나 자신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청년들이 여기 속한다. S 세대는 싱글(Single)과 솔로(Solo)의 이니셜을 따 온 표현으로, 독립적이고 자기관리에 철저한 20대를 말한다. I 세대는 어려서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학습하여 디지털 기기와 문화에 익숙하다는 특징이 있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낡은 표현도 있지만, 이들 모두 사회가 규정한 청년의 이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83년생 직장인 김모씨는 MZ 세대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와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의 관심사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며 “굳이 합쳐 MZ 세대라고 부르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지나치게 넓은 연령을 묶는 세대론이 당사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N포 세대와 같은 용어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는 이도 있다. 96년생 대학생 안모씨는 “포기한 적이 없는데 어느 순간 포기한 세대가 되어 있었다. 삼포 세대의 몇몇 당사자들이 청년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라며 세대론이 청년을 과하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신문연)은 사회학, 인문학, 미디어학, 문화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구하는 학술공동체다. 이곳 소속 김선기 연구원은 지난 2019년 그의 책 ‘청년팔이 사회’를 통해 세대 담론이라는 현상 자체를 비판적으로 재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견을 조장하는 세대론은 청년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김선기 신문연 연구원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청년 세대론 범람 원인과 이로 인한 문제는 무엇인지 들어 봤다.

-유독 청년을 대상으로 한 세대론이 범람한다.

“현상 저변에는 △특정 연령대를 타게팅 하는 전통적 기업 마케팅 전략 △세대를 기준으로 유권자를 분할하고자 하는 정치 마케팅 △조직 내 세대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조직문화 담론 △청년실업률 증가 및 노동시장 이행 지체로 인한 청년 연령층 내 빈곤과 불평등 심화 현상 등이 혼합되어 있다. 특히 2010년대 이후로는 세대를 기준으로 유권자를 분할하는 정치 전략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세대론이 실제 청년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청년 세대론은 2010년대 중후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청년 고용정책, 복지정책 및 여러 가지 법·제도·공간 등의 청년 정책 구성에 영향을 끼쳤다. 현행법상 청년 혜택을 받는 법적 나이는 만 34세까지다. 오늘날의 19~34세는 스스로 정체성을 깨닫기보다, 제도권에서 호명될 때 청년임을 인지한다. 다시 말해 청년 담론의 제도 안에서 자신이 청년임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고정관념을 만들어 낸다는 악영향도 크다. 미디어에서 클리셰처럼 다루는 편견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또 그러한 편견을 반영해 이들을 대하는 것은 청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장애물이 된다.”

-청년 세대론의 문제는 무엇인가.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세대론이 청년층 내부의 격차와 불평등을 은폐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주류 담론에서 포착하지 않는 청년의 삶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메커니즘으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담론의 의도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청년이 ‘조직 내에서 충성보다는 자아실현을 중요시한다’는 식의 담론은 객관적 설명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기업의 노동 유연화 실천과 무관하지 않다.”

-MZ 세대가 전형적인 청년 세대론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특정 연령대를 묶어서 호칭하고, 기성 화자가 이를 빌려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청년 세대론이다. MZ 세대에 청년층이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너무 넓은 연령을 하나로 묶고 있어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커 보인다.” 

-청년 스스로 새로운 세대 이름을 제시하면 세대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스스로 청년 담론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세대론 부작용을 피하기는 어렵다.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라는 말이 때때로 틀린 것처럼 청년 담론도 마찬가지다. 자기 재현이 더 정확하거나 더 올바르리라는 보장은 없다. 자신을 정의하는 실천보다, 문제를 제기하는 반 담론을 통해 효과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세대론 없는 청년 담론은 어떤 모습일까.

“실체 없는 세대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짊어지겠다는 선언을 할 때 세대론 바깥의 청년 담론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 이를 청년팔이 사회에서는 ‘탈-청년’의 실천이라고 개념화하기도 했다. 청년들에게 유해한 기존의 청년 담론과 단호하게 선을 긋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청년 담론을 다시 써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작업이기에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성취 역시 희미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필요한 실천이라 생각한다.” 

조수근 쿠키청년기자 sidekickroot@gmail.com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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