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연료비 조정단가 발표를 잠정 연기했다. 4월 전기요금 동결을 차기 정부의 에너지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당선인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하지만 산업부는 부처 간 협의가 끝나지 않아서라고 일축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분기에도 전기요금이 동결될 경우 올해 한전의 적자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바라보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지난 20일 예정된 연료비 조정단가 발표 시점을 잠정 연기했다. 전기요금 단가 결정에 있어 최종 권한을 지닌 산업부의 통보 연기에 따른 결과로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연료비 조정단가 발표 시점 연기와 관련해 “물가 상승 우려 등이 있어 정부 관계 부처 간 협의가 이뤄지고 있고, 아직 협의가 끝나지 않아 연기했다”며 “차기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 요구에 따른 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업계는 하지만 윤 당선인 공약에 인수위가 제동을 건 것으로 보고 있다. 윤 당선인이 대선 기간인 지난 2월 ‘4월 전기요금’을 동결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는데 이를 의식하고 결정을 늦춘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새롭게 들어설 차기 정부에서 2분기 전기요금 동결을 강력히 공약한 만큼 관계부처에서 이를 의식해 미룬 게 아니겠냐”며 “전기요금의 최종 결정 권한은 정부가 갖고 있어 전기 공급업자인 한전은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4월 전기요금 동결을 약속했던 만큼 현실적으로 2분기에도 요금 인상은 어려워 보인다”며 “며칠 내 인수위와 협의를 거쳐 전기요금 단가가 최종 결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 한전의 적자가 계속될수록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전기요금 인상 조건은 이미 충족한 상태다. 지난해 내내 전기요금 동결로 인해 한전의 적자는 창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올해 전기요금이 인상되더라도 적자는 불가피하다.
윤 당선인은 국민 경제 부담을 완화 목적으로 전기요금 동결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원자재 가격 급등 등 현실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공약 실천을 위해 밀어붙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호정 고려대 교수는 “한국은 이미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 무리한 전기요금 상승을 억제하고 있는데도 인위적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막는 행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전기요금을 인상하더라도 상한제가 있어 EU나 미국처럼 급격한 인상은 이뤄지지 않는데도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충분한 안전장치가 있음에도 원칙을 무시하고 요금을 동결한다는 것은 지극히 정치적 재량에 의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유가뿐 아니라 천연가스 및 국제 곡물 가격 등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상한제를 반영한 전기요금 인상까지 이해 못 할 국민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어느 정부든 간에 정치적 판단보다는 일관성 있는 에너지 정책이 더욱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과 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 연료비 조정요금, 기후환경요금 등으로 구성된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연료비 조정요금 결정에 영향을 주고, 연료비 조정단가는 인상폭이 직전 분기 대비 kWh(킬로와트시)당 최대 ±3원 범위로 제한된다. 통상 3원이 오르면 월평균 350kWh를 사용하는 4인 가구 기준 전 분기 대비 매달 1000원가량 부담이 는다.
한편, 올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전기요금이 동결될 경우에는 한국전력의 대규모 적자는 불가피하다. 한전은 지난해 연이은 전기요금 동결로 5조860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국전력 설립 이후 최대 규모 적자다. 또 올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여파로 인해 국제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올라 1분기에도 지난해와 맞먹는 대규모 적자가 예상된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