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수없이 봤던 이야기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향으로 끌고 가 새로운 영화로 만들었다. 우울과 슬픔, 고통 대신 환희와 희망, 사랑을 응시한다. 평행한 세계를 살던 어머니들의 만남이 일으키는 기적이다.
영화 ‘페러렐 마더스’(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만삭의 몸으로 같은 병실을 쓰게 된 사진작가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와 17세 아나(밀레나 스밋)의 이야기다. 두 사람 모두 싱글맘이라는 공통점으로 점차 가까워진다. 하지만 아나의 딸은 사망하고 야니스는 딸 세실리아의 얼굴을 낯설게 느낀다. 혹시 하는 마음에 의뢰한 야니스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고, 이 사실을 비밀로 간직한다.
여성들의 드라마와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전개되는 방식이 독특하다. 디테일한 인물의 감정이나 사건이 발생하는 개연성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대신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중요한 순간만 언급하고 빠르게 넘어간다. 이런 것도 미스터리가 되나 싶을 정도로 일상적인 일들을 미스터리 소재로 삼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그래도 영화에 담아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지만, 모든 일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페러렐 마더스’는 여성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사랑하는지에 주목한다. 여성들이 맺는 관계와 그 관계의 본질이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우정으로 시작한 관계가 사랑이 되기도 하고,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야기의 한가운데엔 과거 프랑코 정권의 탄압으로 사망한 야니스의 증조부, 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기 세실리아가 존재한다.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한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 다음 역사를 이어가는 이야기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남성은 존재하지 않거나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다. 복잡한 관계로 이어진 여성들이 마치 하나가 된 듯 히어로처럼 등장하는 결말 장면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포스터에 표현된 것처럼 과감한 색감이 시선을 뺏는다.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남은 것 같은 단순한 화면구성과 편집이 영화에 몰입을 돕는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표현해내는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의 존재감이 영화의 중심에서 큰 역할을 한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페러렐 마더스’로 지난해 제7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지난 1월 전미 비평가 협회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오는 28일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오는 3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