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내에 머물던 중국 배터리사들이 북미 배터리 시장 진출을 위해 공장부지 선정 절차에 착수했다. 값싼 배터리 가격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앞서 미국에 진출한 국내 배터리사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완성차업체들과의 공고한 배터리 동맹을 기반으로 중국 업체와의 정면 승부를 선언하겠다면서 강한 자신감을 비췄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사들은 미국 진출을 선언하고 공장부지 선정절차에 들어갔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CATL은 최근 부지 선정을 위해 직원을 미국에 급파해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을 돌면서 생산기지 건립 후보지를 물색 중이다.
그동안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자국 내에서 기업 규모를 키워온 중국 배터리사들은 최근 들어 시장 확장을 위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 CATL은 유럽시장 공략을 위해 독일에 해외 첫 배터리 생산기지를 건립 중이다. 올해 가동을 앞둔 상태다. 또 배터리 주요 경쟁국가인 한국에도 국내 완성차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을 위한 서울 사무소를 개설했다.
중국의 미국 시장 진출 선언이 우려되는 이유는 가격 경쟁력에서 국내 기업들이 밀릴 수 있어서다. 중국 배터리사들은 값싼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주로 생산해 납품하는데 중국 업체들이 이를 무기 삼아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서면 한창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국내 배터리사들의 영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에너지 효율이 좋은 일명 삼원계 배터리를 양산하는데 코발트, 니켈 등 상대적으로 비싼 원료를 쓰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 면에서는 다소 불리하다. 또 삼원계 배터리가 배터리 화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약점이다.
또한 글로벌 전기차 1위 기업인 테슬라가 중국산 리튬인산철 배터리 채용을 늘리고 있다는 사실도 걱정거리다.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기업들은 1위 업체인 테슬라를 따라 리튬인산철 채용을 늘리고 있다. 폭스바겐·포드·BMW 등 메이저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리튬 가격이 오르자 일부 라인에서 리튬인산철 채용을 늘렸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중국의 저가 공세 가능성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 완성차업체와의 공고한 배터리 동맹을 기반으로 품질을 앞세워 중국 업체들의 공세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의지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성장세가 큰 만큼 중국 업체들이 세를 키워도 한국기업들의 입지에는 영향이 없을 거란 전망을 내놨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미국 글로벌 완성차업체인 GM(제너럴 모터스)과 포드와 각각 배터리 동맹을 맺고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내 합작법인(JV) 설립을 통해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을 약속하고, 최근에는 유럽 등 해외 시장 공략에도 협력하고 있다.
SK온은 미국 포드사, 터키 코치사와 함께 터키에 최대 45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유럽 첫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국내 배터리 3사 중 완성차업체와 손잡고 유럽에 생산 합작법인 설립에 나선 것은 SK온이 처음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특정 기업이 배터리 시장에서 지배력을 갖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GM, 포드 등 미국 메이저 완성차업체들과 긴밀한 협업관계를 맺고 동반 성장하는 전략을 갖춘 만큼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 업체와 국내 배터리사들이 공략하는 시장 자체가 다르다”며 “중국 업체가 미국 시장에 진입한다고 해도 LFP 배터리는 보급형에 삼원계는 고급형에 공급돼 시장을 양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대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중국 시장 공략도 거세질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기업공개(IPO) 앞서 1월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시장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이날 “중국 내 배터리 보조금 축소 소식을 줄고 있고 중국 진출 기회가 분명 있을 것 같다”며 “중국은 놓칠 수 없는 시장으로 다시 중국에 배터리를 팔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내 배터리사들은 중국 업체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저가·보급형 배터리 시장 진입을 위해 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 가능성도 열어뒀다. 지동섭 SK온 사장은 지난해 10월 한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LFP 배터리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도 상용화 시점은 밝히지 않았지만 과거 개발 경험을 언급하면서 “언제든 진입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