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서운합니다. 취임 직후 청와대 초청해 해결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5년 동안 해준 게 없어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만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의 울분 섞인 말이다. 이들은 이날 윤석열 당선인을 향해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는 책임감을 갖고 11년째 해결하지 못한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표했다. 이날 현장서 만난 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청와대에 초대해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문제해결에 나서겠다고 해서 굳게 믿었는데 바뀐 게 하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가습기살균제 합의를 위한 피해자 단체 회원들은 이날 오전 종로구 대통령 인수위원회 앞 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최대형 화학 환경 재난 참사가 벌어졌음에도 정부의 책임 부재로 가습기 참사 피해자들은 아직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차기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가해기업들의 적극적인 자세와 정부의 책임성 있는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최근 조정위에서 제시한 조정안에 대해선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피해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졸속으로 마련된 조정안은 가해기업들의 책임 회피 명분만을 키워줬다고 비판했다. 또 가해기업들이 앞에선 사과하는 척만 하고 뒤로는 책임 회피에만 몰두한다면서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피해자 가족인 김기태씨는 “전례가 없는 대규모 참사인데 불과하고 몇 달만 조정안이 나온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공청회 한 번도 열지 않은 채 나온 조정안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씨는 기업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가해기업이자 원료업체인 SK케미칼은 SK바사 기업분할 등으로 수조원 이상의 이익을 냈음에도 피해자들에게는 적절한 피해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며 “조정위가 최대 1583억원 규모의 조정안을 내자마자 주총을 열어 조정안을 통과시켰고 언론플레이를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조정안을 반대해서 부결되면 이를 소송 중인 재판에 활용하려는 것으로 결국 책임 회피 행태다”고 덧붙였다.
피해단체 “가해기업 총수 만남 주선해달라”
정부 책임 인정 및 조정안 재조정 요구
피해자 단체들이 이날 인수위 측에 전달한 요구안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책임 인정과 조정안의 재조정, 기업 총수들과의 삼자 면담 요구 등이다.
우선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발생시킨 원료공급 업체인 SK케미칼의 특별지원금을 추가 책정하고, 피해지원금 형태에 배·보상 개념을 넣어 조정안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습기살균제를 유통·판매한 옥시, 애경,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등뿐 아니라 원료 공급사인 SK케미칼도 분명한 책임이 인정된다며 분담금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원금 연령 대상을 조정신청절차 개시 시점이 아닌 가습기살균제 피해 최초 의학적 진단일을 기준일로 삼아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들은 윤 당선인에게는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대한 공식적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가해기업 총수들과의 면담 주선을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사회적 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지적했듯이 정부 부처의 안전관리 부실로 가습기살균제참사가 발생했다”며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든 책임을 져야 하고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또한 “원만하고 합당한 피해자 지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해기업 총수 그리고 피해자 단체 대표와의 만남이 필요하다”며 “종국적 문제해결을 위해 당선인이 나서달라”고 부연했다.
한편 종로구 SK서린빌딩 앞에는 또 다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인 ‘빅팀스’의 항의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조정위가 제시한 조정안의 전면 수정을 요구하면서 6일째 단식농성 중으로 SK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조순미 빅팀스 투쟁본부 위원장은 “기업은 반쪽짜리 조정안을 내놓고 피해자들에게 전부 배상한 것처럼 하고 있다”며 “파행적인 결과를 병상에 누워서 기다릴 수 없고, 인정할 수도 없어 가해기업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이 참사에는 정부 책임도 있다”며 “정부가 역할을 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만큼 윤석열 당선인과 가해기업 SK 대표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면담을 공식적으로 요청한다”고 말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