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일명 ‘검수완박’ 이슈가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에는 검찰개혁은 수포로 돌아갈 거라면서 법안 추진 강행 의지를 천명했고 국민의힘과 검찰은 헌법정신 위배와 수사력 공백, 대장동 수사 회피 의혹 등 문제를 제기하면서 극구 반대하고 있다.
향후 정국의 변화가 주목되는 가운데 검수완박 법안 추진에 있어 핵심 쟁점이 되는 사안 중 경찰의 수사력에 대한 내용을 다뤄본다. 경찰의 수사력을 검증하는 객관적인 지표 등은 제시한다는 게 쉽지 않고, 검·경찰 수사 일선에서 활약하는 수사관과 수사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검찰과 국민의힘에서는 ‘수사권 공백’을 가장 크게 우려한다.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6대 중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가진 검찰은 더 이상 수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이유 때문이다.
15일 발의된 검수완박 관련 법안은 3개월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유예기간 동안에는 6대 중대 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하다. 이후에는 경찰에 6대 범죄 수사권이 이관된다. 검찰은 6대 중대 범죄에 대한 경찰 수사력 부족과 인권침해 가능성을 주장하면서 검수완박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럼 경찰의 수사력은 검찰보다 뒤처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진 않다. 수사 분야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경찰도 전담팀을 꾸려 전략적으로 수사할 경우에는 검찰 못지않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게 다수 수사 전문가들의 평이다.
현재 범죄 사건의 99% 이상은 경찰이 수사를 담당하고 있다. 6대 중대 범죄 중 직접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검찰이 보완수사 또는 직접 수사에 나서고 있다.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서는 경우는 기업·금융, 공직 사건 등 법리적 논쟁이 수반되는 사건 또는 전략적 수사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수의 전문가들은 “금융·회계 등 전문분야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더욱 특화돼 있지만 경찰 또한 해당 분야에 대한 수사 경험이 없진 않기 때문에 이관되더라도 수사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우석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과거부터 오랜 수사 노하우를 쌓아온 경찰이 수사 실무에 있어서는 더 뛰어날 것”이라며 “최근엔 관련 법 지식을 갖춘 고급 인력들을 대거 확보해 그동안 지적돼온 법이론 적용도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찰은 과학수사, 범죄 수사법 등 최신 수사법을 수시로 연구하고 개선하고 있어 경찰의 수사력이 부족하다는 세간의 지적은 다소 설득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경찰 “권한을 주면 충분히 가능해”
경찰은 검찰로부터 6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이관 받더라도 수사 공백은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지금도 6대 중대범죄 사건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수십 년간 과학수사 등 수사 역량을 키워온 덕분에 결코 무리가 없을 거라는 입장이다.
경찰 수사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한 경찰 간부는 19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찰의 수사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데 수사능력은 의지의 문제”라며 “검찰이 잘한다는 금융·회계 수사도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경찰에게 6대 범죄 수사권이 다 넘어온다면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무 과중 우려에 대해서는 “경찰에 많은 사건이 몰려있지만, 관련 법안이 통과된 후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사건의 경중에 따라 수사 배정을 적절히 한다면 공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도 비슷한 취지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남 본부장은 전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청사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경찰의 수사 경험이 검찰보다 월등히 많다”면서 6대 범죄 수사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밝혔다.
남 본부장은 세간에서 우려하는 경찰 수사력에 대해서는 “경찰은 그동안 모든 범죄를 수사해왔다”며 “경찰은 오랜 기간 수사체계를 갖추려 노력했고, 전문가 채용과 교육 등으로 역량을 재고한 만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는 결국 형사재판 위한 절차...법리 해석 중요”
검찰은 자신들의 직접 수사권이 박탈될 경우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이유를 들어 검수완박 법안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없어지면 중수청을 설립하거나 경찰에서 수사를 담당할 텐데 지금까지의 경찰의 행태를 비춰보면 수사공백뿐 아니라 피의자의 인권 침해가 심히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대검찰청 형사부는 최근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국민 여러분께 이런 피해가 생깁니다’라는 제목의 설명 자료를 냈다. 관련 자료는 검수완박 법안 통과 시 발생할 수 있는 국민적 불편을 소개하고 있다. 경찰 수사력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인권침해, 불법구금 등 국민들의 피해가 예상된다면서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검찰 구속기간 중 무혐의가 밝혀지더라도 무조건 10일 동안 구치소에 갇혀 있어야 한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사법경찰이 구속 송치한 사건 수사 도중 혐의가 없거나 구속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구속기간 만료 전이라도 검사의 판단에 따라 피의자에 대한 구속을 취소가능하다. 하지만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에는 구속이 불필요해도 검사가 임의적으로 구속을 취소할 수 없다.
검찰 수사 일선에서 근무하는 한 검찰수사관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찰에서 검찰에 송치한 사건 중 재수사가 필요해 직접 수사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경찰이 검찰보다 수사 인력이 많다고는 말하지만 이미 경찰에 배정된 사건이 워낙 많아 인력 가용도 여유롭지 않은 걸로 안다”고 말했다.
또 “강력 범죄 등 특정 부분에서는 경찰의 수사력이나 노하우가 뛰어난 건 맞지만, 기업·경제 분야 수사는 검찰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수사할 필요성이 크다”며 “재판을 통해 법리적 논쟁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도 법 전문가 검찰이 직접 수사권을 보장받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검·경 수사력 따지기 무의미...국민 수사 요구기회 박탈이 더 문제”
검찰과 경찰의 수사력을 비교하는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오히려 수사기관에 수사를 재차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한 번으로 줄어들어 실체 진실과 멀어질 수 있고, 국민적인 손해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인 정웅석 서경대 교수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일각에서 경찰의 수사력을 문제 삼으면서 수사 공백 우려를 드러내는데 이는 중요한 게 아니다”며 “오히려 검찰이 직접 수사권을 가지면서 한 번 더 수사 요구를 할 수 있었으나 검수완박 법안 통과로 검찰이 수사에 직접 관여할 수 없게 되고 결국 국민 입장에서는 크나큰 손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이미 경찰은 99% 이상의 수사를 담당하고 있고, 검찰은 고작 1% 미만의 직접 수사를 하고 있는데 이를 급박하게 박탈하려는 시도는 결국은 정치적 프레임일 뿐”이라면서 부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