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4·3사건’ 의미를 다시 물어야 합니까?”
백경진 제주4·3범국민위원회 상임이사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통과한 특별법 개정안을 통해 4·3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큰 발걸음은 내디뎠으나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목소리를 냈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해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학살된 현대사의 사건을 일컫는다.
몇몇 진보 정권 차원에서는 4·3사건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을 분명히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국가의 근간이 되는 ‘법(法)’에는 아직 제대로 국가 폭력에 대해 명시되지 않아 결국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4·3사건과 관련해) 국가의 폭력을 인정한다고 발언했지만, 결국 법으로 완성시키는 데는 실패했다”며 “정권이 달라지더라도 4·3사건의 의미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한다면 법에 ‘국가의 폭력’에 대한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새롭게 출범하는 윤석열 차기 정부가 국민적 합의와 논의를 통해 이뤄 놓은 ‘4·3사건 특별법’의 의미와 그 흐름을 이어 나가길 간절히 소망했다.
지난달 3일 열린 ‘제74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는 보수 측 인사 최초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해 다소 이례적인 모습을 언급하면서 “당선자 신분이긴 하지만 추념식에 참석한 것은 과거보다는 진전이 된 모습”이라고 고무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어 “윤석열 정부가 4·3사건의 명예회복에 힘을 실어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의 주변인들이 함께 힘을 보태주길 소망했다. 그는 국민의힘 소속 이명수 의원이 제주 4·3사건과 관련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사례를 언급하면서 “윤 당선인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같이 4·3사건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지원해주는 게 필요하다”며 “정권이 바뀌는 시점에 다소 우려감은 들지만 큰 흐름은 해치지 않을 거란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백 이사는 3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지난 4월 12일부터 4·3사건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의 방안이 마련됐다는 사실에는 적극 환영의 뜻을 내비췄다.
그동안 전혀 이뤄지지 않던 피해자에 대한 구제방안이 마련된 사실 자체가 의미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4·3사건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될 당시 손을 들고 환영했다. 미비한 점이 있지만 어찌 됐건 4·3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 과제는 많이 남았다고 언급했다. 특히 특별법의 내용이 아직 미흡하고, 근본적인 책임이 있는 미군의 사과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백 이사는 “‘추가 진상조사’, ‘배보상’, ‘수형인에 대한 재심’ 등 중요 쟁점들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수용했지만 향후 보완 과정은 분명히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범국민위원회와 제주4·3평화재단이 중심이 돼 활동하고 있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백 이사가 속한 제주 4·3 범국민위원회는 지난 2018년 광화문 광장에서 미군에게 책임을 묻고,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당시 400개가 넘는 4·3 관련 단체들이 모였고 성명서 낭독 후 미 대사관에 서한을 전달하려 했지만 제지당했다.
또 지난 2020년과 2021년에는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제주 4·3사건’ 관련 포럼을 열고 국제적인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미군정기에 일어난 사건임이 명확하고, 정부 수립 이후에도 미군이 군사통제권을 갖고 있었기에 1차적 책임은 미군에게 있다”며 “추가 진상조사 과정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미군 측 자료들을 확보해 이를 근거로 미군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이끌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속해 목소리를 내겠지만 미군에게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특별법이 단순히 물질적 배·보상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문화 또는 사회적 변화로 이어지길 희망했다. 제주가 아닌 서울에 관련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지어지고 많은 이들의 4·3사건의 의미와 과거의 기록을 제대로 기억하길 바란다.
백 이사는 “(4·3사건은) 제주 지역에 한정돼 발생한 사건이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실로서 가치가 있다”며 “인권 측면에서도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주 아닌 서울에 기념관 등을 건립할 필요성도 크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배·보상은 희생자 대상으로만 진행되고 있는데 과거에 통째로 사라진 마을과 가옥 등은 공동체 복원이라는 과제 또한 안고 있다”고 부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