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가 윤석열 정부 5년 임기 동안 추진할 ‘110대 국정과제’를 4일 발표한 가운데 2030세대 청년들의 표심을 자극했던 ‘한줄공약’ 다수가 빠져 논란을 빚고 있다. 보수정권 성향을 반영해 친기업적인 각종 공약은 거의 다 포함시켰으나 대선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청년층에 대한 깊은 배려는 없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4일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직접 나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과 세부 과제들에 대해 설명했다.
문제는 윤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청년들에게 약속한 주요 공약들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특히 2030 남성(이대남)들의 압도적 지지를 이끌었던 ‘여가부 폐지’, ‘병사월급 200만원 지급’ 등 공약은 빠졌거나 후순위로 밀렸다.
‘여가부 폐지’와 관련된 내용은 국정 과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학교 밖 및 위기 청소년 지원’, ‘한부모·다문화 가족 지원’ 등 여가부의 역할을 명시해 폐지보다는 존속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했다.
병사월급 200만원 지급 공약도 후순위로 밀렸다. 윤 당선인은 ‘한줄공약’을 통해 “취임 즉시 병사 봉급 체계 전면 조정해 전체 병사의 봉급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인상하겠다”면서 200만원 지급을 공언했지만, 인수위가 공개한 국정과제에는 봉급과 자산형성프로그램 운용을 포함해 2025년이 돼서야 병장 기준 월 200만원을 지급한다고 밝히고 있다.
청년만을 대상으로 한 공약은 아니지만 발표 당시부터 이행 여부가 의심됐던 ‘전기요금 동결’과 충청권이 극렬히 반대했던 ‘사드 추가 배치’ 등 일부 공약도 빠졌다.
반면 친기업적인 공약들은 거의 빠짐없이 반영됐다. 재계에서 끊임없이 요구해온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을 예고하듯 ‘산업안전보건 관계 법령 정비’를 국정과제에 포함시켰고, 근로시간 선택 확대 과제도 넣었다. 기업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약속한 규제 개혁 방안은 국무조정실의 국정과제로 설정해 국정 전 분야에 걸쳐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또 문재인 정부와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친원전’ 정책을 국정과제 한 항목에 넣었다. 탄소중립을 위한 과정에서 기업들이 에너지 비용에 많은 부담을 지는 만큼 값싼 원자력 발전 확대로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겠단 의도로 해석된다. 다만 대국민 에너지 공약으로 내세웠던 ‘전기요금 인상 동결안’과 관련된 내용은 전혀 포함되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낸다.
이대남 “배신의 정치, 지방선거서 심판할 것”
“선거철마다 남발되는 ‘공(空)약’...정치풍토 바꿔야”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에 힘입어 치열한 접전 끝에 승리한 윤 당선인은 ‘토사구팽’ 논란에 빠졌다. 선거 과정에서는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선전하면서 가장 먼저 챙길 거라는 기대와 달리 전면에 내세웠던 정책 공약들을 전면 수정하거나 후퇴시키면서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남성 유권자들의 ‘역풍’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여가부 폐지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강한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배신의 정치”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지방선거에 민주당에 투표하겠다는 누리꾼들의 글도 나왔다. 한 누리꾼은 “여가부 폐지해서 그 예산을 가져다 쓰면 된다던데 아닌가 보다”며 “윤 당선인 ‘한줄공약’은 믿거(믿고 거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젊은 2030 남성들의 반발이 가장 컸다. 군 전역 후 대학교 복학을 곧 앞둔 20대 청년 남성 최준원씨는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을 내세울 때부터 비현실적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럼에도 ‘여가부 폐지’한다는 공약에 표를 던졌는데 이젠 강한 배신감이 든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자임을 밝힌 한 30대 남성 직장인은 “윤석열 당선인을 뽑지 않아 애초 기대한 바가 없다”며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을 선심 쓰듯이 내놓고 남성 청년 유권자들을 기만한 걸로 밖에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선거 때 내세웠던 다수 공약이 국정과제에서 배제된 사실과 관련해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로 봤다. 과거 대선 사례를 되짚어 볼 때 선거에서 내세웠던 공약들이 ‘공(空)약’에 그친 사례가 많았다면서 한국정치의 진실된 반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후보자가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 이를 지지한다는 의사표시로서 투표하고, 당선자는 유권자와 약속한 공약을 지키는 게 일반적인 대의 민주주의의 모습”이라며 “언제부터인가 ‘공약’이 ‘공(空)약’이 되어 버린 한국정치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 이후 선거과정 당의 공략집에 실렸던 ‘반값 등록금’ 공약을 본인은 약속한 바 없다고 뒤집었던 사례가 있다”며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국민에 대한 진솔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