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찬란한 물결 헤치고~ 나는 외로이 꿈을 찾는다♬” 가수 한영애의 목소리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객석으로 번졌다. 조명은 물론, 악기에서 새어나오는 빛마저 모두 가려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하던 터였다. 느껴지는 거라곤 귓가로 파고드는 소리와 손끝에 닿는 손잡이뿐. 시각이 제한되자 다른 감각이 예민하게 깨어났다. 두려움과 황홀경이 번갈아 오갔다. ‘페스티벌 나다’ 콘서트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암전 공연은 이렇게 펼쳐졌다. 주최 측이 시각장애인의 삶을 잠시 체험하며 새로운 감각으로 예술을 감상하라는 취지로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배리어프리(Barrier Free·장벽 없는) 콘서트 페스티벌 나다가 21일과 22일 서울문화센터 서교에서 열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시기를 견뎌낸 공연장은 모처럼 함성으로 들끓었다. 22일 공연 세 번째 공연 주자로 무대에 오른 ‘소리의 마녀’ 한영애는 “대기실에서 급히 배웠다”며 양손 검지를 맞붙이더니 이내 손바닥이 마주보도록 두 손을 수평으로 눕혀 빙글빙글 돌렸다. ‘함께 어우러지다’라는 뜻의 수어였다. 그는 말했다. “우리가 서로를 조금만 더 이해하고 양보하고 인정한다면, 모두 함께 덜 괴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1열 명당에 앉은 임일주(48)씨는 3시간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누구보다 즐겁게 음악을 만끽했다. 임씨는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이다. 가수 김경호를 좋아해 공연을 자주 봤다는 임씨는 “휠체어 좌석은 대부분 공연장 맨 뒷줄에 배치돼 아쉬웠다. 휠체어 좌석도 관객이 선택해서 앉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 측 역시 1층 마지막 줄에 휠체어 좌석을 설치했지만, 주최 측은 앞쪽에 따로 자리를 만들었다. 또 다른 휠체어 이용 관객 양승재(38)씨는 “다른 공연은 전화로 티켓을 예매하거나 직접 공연장에 방문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불편했다”며 “올해 처음 페스티벌 나다에 왔는데 생각보다 프로그램이 다채로워 즐겁게 봤다”고 말했다.
휠체어 좌석 뒷줄에는 음악을 진동으로 전해주는 우퍼 조끼가 마련됐다. 청력이 낮은 관객들을 위해 해외에서 공수해온 장치다.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도 최근 투어에서 “우리 공연이 더 포용력 있고 접근성 좋기를 바란다”며 청각장애인 관객에게 우퍼 조끼를 제공했다. 무대에선 수어 통역사 세 명이 번갈아 가며 노랫말을 손끝으로 옮겼고, 화면에 문자 통역도 제공됐다. 장애 작가와 비장애 작가가 함께 제작한 미디어아트는 소리에 실시간으로 반응해 볼거리를 더했다. 임씨는 “다른 공연에서도 문자 통역이나 저시력 장애인을 고려한 영상 등을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발달장애인에겐 안심 인형과 공기압 조끼를 줘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그룹 틴틴파이브 멤버로 활동하다가 2004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재즈 가수 이동우는 이날 무대에 올라 “나다 페스티벌은 특정한 누구를 위해서 만들어진 시간과 공간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공연이 장애인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주최 측 역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다양성과 함께 확장되는 세계”를 추구한다. 공연 마지막 주자로 나선 신예 밴드 터치드는 “다르다는 사실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다름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며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을 페스티벌 나다가 콕 짚어줬다. 그래서 더 의미 있는 공연”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