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로 물가도 크게 오르면서 전통시장 상인들의 시름이 깊다. 코로나19 일상 회복이 이뤄지며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했던 상인들은 가파른 물가 상승 악재 속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26일 오전 9시40분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서울 중구 중앙시장의 풍경은 한산했다. 평일 오전이라고 해도 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드물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기침체는 소비자의 주머니를 얇게 만들어 놓은 듯 했다.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일상 회복이 반갑지만은 않은 모습이다. 오히려 밥상물가 고공행진으로 수입에 직격탄을 맞았고 식자재와 공산품 등 생산 원가는 치솟는데 마진은 줄어 애로사항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중구 중앙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40대 김 모씨는 "삼겹살을 비롯한 고기 종류 가격이 크게 올랐는데, 삼겹살 200g당 1만3000원 정도했지만 1만7000원에 판매하고 있다"면서 "사료값 자체가 인상된 영향이 큰데 가격을 떠나 물건 자체가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산과 수입산 고기 가격이 같이 오르고 있어 물가에 대한 감을 못 잡겠다"면서 "고기 가격이 비싸지면서 소비자들이 저렴한 음식으로 유턴해서 소비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추가게 주인 50대 이 모씨도 "고추 가격은 국내산의 경우 작년과 제작년, 올해 다 비슷한데 중국산 고추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보통 한근(600g) 7000원에서 9500원으로 올랐으니 대략 30% 증가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고추 뿐만이 아니라 들깨 가격도 엄청 올랐다. 1년 전만 해도 참깨가 들깨보다 가격이 비쌌는데 지금은 들깨가 값이 더 나간다"며 "국산 햇마늘도 10~15% 정도 올랐다. 부득이하게 원자재 값이 오르니 가격을 올려서 판매할 수 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사실상 마진도 남는 게 거의 없다"고 밝혔다.
원자재 인상분을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상인들의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식자재를 도·소매로 납품하고 있는 50대 장 모씨는 "식자재가 전반적으로 30~40%는 가격이 올랐다. 고기부터 시작해 햄, 소세지도 오르고 있고 안 오르는 품목이 없다. 부자재가 오르니 다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물가는 더 오를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향후 1년 소비자물가 예상 상승률)은 3.3%로, 9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가 지난 1년간 주관적으로 체감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의미하는 '물가인식'(3.4%)도 한 달 사이 0.2%포인트 높아졌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의 지갑은 가벼워지고 있다. 이날 오후 중앙시장을 방문한 40대 가정주부 강 모씨는 "오랜만에 장을 보러 나왔는데 채소, 공산품 값이 많이 오른 걸 체감하고 있다"면서 "주부 입장이다 보니 식자재를 구매할 때 더 신중하게 고민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강씨는 또 "소비심리는 풀리는 것 같은데 외식 물가가 많이 오른 탓에 외식하는 것도 부담스럽다"면서 "그렇다고 해도 밖에 나오면 외식을 안할 수가 없어서 일부러 저렴한 곳으로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종수 서울중앙시장운영회 회장은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인한 소비가 상당히 위축돼 있는 상황"이라며 "변두리 시장보다 시내 대형 전통시장들이 타격이 더 큰데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 변화에 따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