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하지 못한 놀라운 경험이다.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한국 배우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부터 놀랍다. 그들이 맺은 인연과 캐스팅 과정, 촬영장 분위기까지 영화 밖 에피소드 자체가 한 편의 영화다. 첫 술에 배부르긴 쉽지 않다. 영화를 보면 다른 의미로 놀랍다. 영화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감독과 한국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배우들이 이처럼 아쉬운 결과물을 만든 이유를 곰곰이 돌아보게 한다. 분명 각자 역할을 다했지만 조화롭지 못하다.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입양시키려는 브로커와 이를 잡으려는 경찰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비오는 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린 소영(이지은)은 다음날 되찾으러 방문했다가 아기가 사라진 걸 알게 된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송강호)과 베이비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동수(강동원)가 소영의 아기를 입양시키려고 몰래 데려간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소영은 둘을 경찰에 고발하려 하나, 아기를 키울 적임자를 찾고 돈도 받는다는 말에 이들의 입양 브로커 여정에 합류한다.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여성·청소년계 형사 수진(배두나)은 조용히 이들의 뒤를 쫓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탐구해온 주제의 연장선에 놓인 영화다. 사회 시스템의 빈곳을 메우는 개인의 선의와 욕망, 세상 그 무엇보다 생명을 우선시하는 태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더 가족처럼 보이는 대안 가족, 범죄를 용인하지 않고 명확한 처벌을 강조하는 씁쓸한 결말까지. 언어와 배경은 달라졌어도 고레에다 감독의 색깔로 가득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죽이는 것보다 태어난 후 버리는 게 더 나쁜 것이냐는 질문은 영화를 탄생시키고 움직이게 한 원동력처럼 들린다. 인물들 각자 가진 고민과 생각들이 뒤엉켜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엉뚱한 재미와 감동이 ‘브로커’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동안 한국 상업영화에서 본 적 없는 낯선 인물들과 정서, 사고방식이 유독 눈에 띄는 영화이기도 하다. ‘브로커’에는 불분명한 선악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윤리나 법 대신, 각자 살아온 다른 경험과 다른 신념이 더 큰 기준인 인물들이다. 한국영화였으면 빚을 진 상현이 가진 부담과 압박감을 이야기의 반전에 이용하는 흐름으로 흘러갔겠지만, ‘브로커’는 상현만의 또 다른 스토리를 이어가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야기를 위해 인물을 이용하지 않고, 철저히 인물 성격으로 이야기가 빚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선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한국영화가 그동안 있었나 돌아보게 한다. 어딘가 다른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한국영화는 이런 모습일 수 있겠다는 느낌도 든다.
‘브로커’의 낯선 지점들이 한국영화 던지는 의미가 크다. 동시에 관객들이 이야기를 한번에 온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너무 유명한 배우들이 평범하다 못해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한다. 각자 주인공처럼 연기하는 인물들이 가족처럼 친근하게 어울린다. 잔잔하고 느리게 흘러가야 할 장면들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어색하고 낯선 영화 속 순간들에 적응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또 브로커들의 이야기에 형사들의 고민과 범죄 사실까지 얹어져 많은 인물들의 낯선 감정을 이해하고 따라가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붙어도 중심을 잡으며 ‘브로커’ 속 정서를 설득해내는 배우 송강호의 연기가 유독 빛난다.
오는 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