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제조 및 유통업체가 2등급 의료기기 공급내역을 보고하라는 정부 정책에 대해 “과한 처사”라며 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근 국민청원에서 ‘2등급 의료기기 공급내역보고 의무화 제도의 폐지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청원의 취지는 2등급(이하 1등급 포함) 의료기기 제조업체 및 판매(유통)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공급내역보고 의무화의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제도시행을 폐지하기 위함이다.
의료기기 공급내역보고 제도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유통구조 투명성 및 위해제품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020년부터 시작한 제도로, 위험도가 높은 4등급 의료기기부터 반영해 3등급(2021년 7월), 2등급(2022년 7월), 1등급(2023년 7월)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주요 내용은 △공급자 정보 △거래처 정보 △제품정보(표준코드를 통한 품목명, 모델명, 로트번호 등) △공급정보(일시, 수량, 의료기관 공급시 단가)이다.
의료기기 제조업자, 수입업자, 판매업자, 임대업자가 보고 의무자에 해당하며 만약 공급내역을 보고하지 않은 경우 판매업무 정지 15일 및 과태료 50만원 처분을 받게 된다.
이에 청원인은 ‘위해제품 투명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1·2등급 의료기기 공급내역보고는 과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청원인에 따르면 2등급 의료기기는 사용 중 고장이나 이상으로 인한 인체에 대한 위험성은 있으나 생명이나 중대한 기능장애에 직면할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 2등급 의료기기는 잠재적 위해성이 낮은 혈압계, 안경, 렌즈, 파라핀욕조 등이며, 1등급 의료기기에는 압박용 밴드, 붕대 등의 치료재료가 포함된다.
청원인은 “사실상 1, 2등급은 잠재적 위해성 매우 낮고 소비자 입장에서 공산품과 의료기기가 혼재돼 있는 상품들도 즐비하다. ‘파라핀욕조’ 품목 상품의 경우 의료기기 인허가를 받아 진단, 치료목적의 효능효과를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정도차이가 있을 뿐 공산품 파라핀욕조가 더 많이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러한 잠재적 위험성이 낮은 제품까지 공급내역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은 과한 처사”라고 호소했다.
또한 2등급 의료기기는 렌즈, 안경렌즈와 같은 다품목 취급업체가 많기 때문에 추가 인력, 비용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공급내역 보고 시, 품목별로 일련번호, 의료기기 표준코드(UDI)코드, 단가 등과 같은 정보가 모두 다르고 같은 품목에서도 UDI 코드 등이 구분되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고 공급/납품일자까지 구분해 파일을 작성해 보고해야 한다.
청원인에 따르면 의료기기유통업체에서 유통되고 있는 2등급 의료기기 중에는 UDI코드가 부착되지 않은 경우도 있고, UDI코드가 부착돼있다 하더라도 통합정보시스템에 등록돼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장 흔하게는 제조업체 제품들의 바코드 등록시 14자리의 UDI를 만들어 넣어야 하는데 13자리만으로 바코드를 생성해서 부착한 곳들이 많아 바코드스캔시 오류가 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청원인은 영세업체가 3, 4등급 의료기기 업체보다 접근이 쉬운 1, 2등급에 몰려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일례로 식약처에 등록돼 있는 1등급 의료기기 중 품목명 ‘압박용밴드’(588개 중 1개 품목)를 검색해보면 제조업체별, 모델별, 제품별로 7만 1901건이 검색된다. 반면 3, 4등급 제품은 품목허가 수만 하더라도 600개 채 되지 않는다.
청원인은 “한 품목에 적게는 몇 개, 많게는 몇 십 개의 제품들을 제조하는 영세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제품별(포장단위별)로 UDI를 생성해 부착하고 출고시 검수과정을 거쳐 공급내역보고까지 해야한다는 건 엄청난 업무량 증가와 부담이 된다”고 토로했다.
업계 공감대 높아…협회 관계자 “의견청취 노력할 것”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들도 높은 공감대를 표현하고 있다. 지난해 시작한 3등급 의료기기 공급내역보고 당시부터 영세한 업체가 대부분인 의료기기업계는 “현실적 반영이 어렵다”고 정부에 의견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A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모든 거래처의 제품 단가, 공급금액, 수량 등 언제 나갔고 어떻게 나갔으며 반품될 경우 반품수량까지도 등록해야 한다. 2~3등급 의료기기 업체 경우 재료, 렌즈와 같은 낱개, 다품목 제품이 많아 수량이 만만치 않고 거래처도 의료기관 외에도 기관, 편의점, 안경점 등 몇 천, 몇 만곳이나 되기 때문에 업무 과중이 심하다"고 밝혔다.
B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의료기기 취급 업소에만 엄격한 제도에 대한 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보고사항 및 항목에 대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만 작성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정보시스템도 업체들이 잘 활용할 수 있게끔 개선해줬으면 좋겠다"고 전달했다.
이에 대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공급내역 보고제도로 인한 업계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협회 측에서도 이에 대해선 업계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앞으로도 좌담회, 토론회 등을 통해 꾸준히 자리를 마련, 정부와 함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