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일찍 올 줄은 몰랐다. 영화 ‘범죄도시2’(감독 이상용)가 11일 오후 1시50분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섯 편의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한 2019년 이후 3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 위기가 기회로… 2년6개월 만에 일어난 반전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모은 마지막 영화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다. ‘겨울왕국2’(감독 크리스 벅)가 2019년 12월 누적관객수 1000만명을 넘어선 이후 2년 6개월 동안 1000만 영화는 등장하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2020년 1월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가 기록한 475만명이 한국영화가 기록한 가장 많은 관객수였다. 지난해 12월 잠시 백신패스관이 생겼을 때 개봉한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감독 존 왓츠)이 관객수 755만을 기록했을 뿐, 500만명을 넘은 영화도 없었다.
흥행 영화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영화관을 찾는 전체 관람객이 크게 줄었다. 2019년 2억2600만명이 넘었던 관객수가 다음해 약 5900만명으로 급감했다. 연 관객수가 6000만명 이하로 떨어진 건 2004년 영화관입장권 집계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관람객이 줄어 영화관 매출도 70%까지 감소했다. 상황이 나빠지자 제작을 마친 영화는 개봉을 미뤘다. 1년 동안 개봉할 수 있는 100여 편의 영화가 창고에 쌓였다.
영화관을 찾던 관객들은 OTT 서비스로 이동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동안 국내 OTT 가입자 수는 1135만명을 돌파하며 유료TV 가입자 수를 앞질렀다. 2017년 36.1% 수준이었던 OTT 서비스 이용률이 지난해 69.5%로 증가했고, 정액 요금제를 이용하는 OTT 서비스 이용자는 50.1%로 2017년 5.6%보다 약 9배나 늘었다. OTT 오리지널 영화를 영화관에서 2주 먼저 공개하는 방식으로 영화계와 OTT업계의 상생도 이뤄졌다.
지난 4월18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5월4일 개봉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감독 샘 레이미)는 개봉 첫날 70만, 개봉 첫 주말까지 35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올해 4월까지 매달 전체 관객수 200만~500만에 그쳤지만, 5월 한 달 동안 1400만명이 넘는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 월 관객수 1000만이 넘은 건 1600만명을 기록한 2020년 1월 이후 처음이다.
△ 팬데믹 이후 첫 1000만 영화가 된 이유
다른 영화도 아닌 ‘범죄도시2’에 1000만 관객이 몰린 이유는 다양했다. 오랜만에 관객들이 볼만한 영화가 개봉했다는 점이 컸다. 이신영 롯데시네마 홍보팀장은 10일 쿠키뉴스에 “그동안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관객들이 재밌는 영화를 볼 기회가 적었다”라며 “좋은 콘텐츠가 있으면 관객들이 영화관을 다시 찾는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증명됐다. 그동안 영화관에 오지 못한 동안 쌓였던 ‘보복 소비’가 일어나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처음 영화관에 가게 만든 대중적인 영화라는 점도 ‘범죄도시2’의 1000만 돌파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이후 8개월 만에 영화관을 찾은 윤모(31)씨는 “영화 관람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를 체감하는 상징적인 활동”이라고 했다. 그는 영화관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느낌이 그리워 ‘범죄도시2’가 개봉한 주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윤씨는 “‘범죄도시2’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볼 것 같은 대중적인 영화였다”라며 “‘범죄도시’ 1편에 대한 실망이 컸기 때문에, 만약 거리두기 해제 후 개봉한 게 아니었으면 ‘범죄도시2’를 안 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영화를 보는 동반 관람객이 많은 점도 1000만 영화의 특징이다. 지난달 20일 부모님과 함께 ‘범죄도시2’를 본 김모(30)씨에겐 재밌다는 입소문, 부모님과 봐도 어색하지 않은 영화라는 정보가 중요했다. 김씨는 “배우 마동석이 출연한다는 얘기에 부모님도 함께 영화관으로 향했다”며 “매진된 것처럼 좌석이 가득 찬 인기 영화인 점도 부모님 마음에 쏙 들었다”라고 말했다. 영화관 측도 “‘범죄도시2’의 동반 관람 비율이 팬데믹 시기보다 늘었다”고 밝혔다.
장르와 배우의 매력, 영화 등급도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범죄도시2’를 홍보한 이채현 호호호비치 대표는 “묵은 스트레스와 TV로 해결하지 못한 카타르시스를 스크린에서 만끽할 수 있는 통쾌한 액션 영화라는 점이 ‘범죄도시2’의 흥행 요인”이라며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면서 함께 즐기고 응원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을 마케팅에 있어 가장 크게 염두에 뒀다”고 설명했다. 이제 믿고 보는 배우가 된 마동석의 티켓 파워와 JTBC ‘나의 해방일지’로 인기를 얻은 손석구의 매력도 ‘범죄도시2’가 사랑받은 원인으로 꼽았다. 이 대표는 “청소년 관람 불가가 아닌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인 점도 1000만 관객을 모을 수 있었던 플러스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 “지금 분위기 계속 이어진다”
‘범죄도시2’가 끝이 아니다. 전망이 밝다. ‘범죄도시2’ 흥행 성공에 힘입어 관객들이 기다리던 기대작들이 속속 개봉 소식을 알렸다. 배우 송강호가 지난달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지난 8일 개봉했고, 마니아 층이 탄탄한 영화 ‘마녀’(감독 박훈정)의 후속작인 ‘마녀2’(감독 박훈정)가 오는 15일 개봉한다. 이후에도 톰 크루즈의 ‘탑건: 매버릭’은 22일,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헤어질 결심’이 29일 개봉을 앞둬 ‘범죄도시2’의 흥행 기운을 이어받을 6월 개봉 라인업을 채웠다.
성수기인 여름을 겨냥해 제작비 200억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영화도 줄줄이 개봉을 예고했다. 역대 국내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의 후속작인 ‘한산: 용의 출현’(감독 김한민)이 다음달 개봉을 알렸다. 지난해 칸영화제에 초청됐고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은 오는 8월 개봉한다. 최동훈 감독의 신작인 ‘외계+인’과 이정재 감독의 첫 연출작인 ‘헌트’도 여름 개봉을 계획 중인 상황이다.
이신영 롯데시네마 홍보팀장은 “아직 개봉할 작품들이 많이 남아있다”라며 “여름 성수기까지 개봉할 영화가 있기 때문에 지금 같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