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옷에 하회탈을 쓴 사람들이 총을 들고 서 있다. 같은 옷에 가면까지 써서 누가 범인이고 누가 인질인지 구별되지 않아 경찰들은 난감하다.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아홉 명의 범인들은 누구도 다치지 않는 걸 목표로 4조원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24일 오후 4시 공개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은 2026년 통일을 앞둔 한반도를 배경으로 가상의 공동경제구역 조폐국에서 벌어진 인질 강도극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다. 시즌5까지 제작된 스페인 원작 ‘종이의 집’을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했다. 대부분 원작 이야기와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새로운 배경과 가상 설정이 더해져 곳곳에 달라진 점이 숨어있다.
쿠키뉴스 대중문화팀 기자들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을 어떻게 봤는지, 다음 회차를 더 볼지 말지 이야기를 나눴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 어떻게 봤어?
낯선 스페인 드라마를 K드라마로 만들어 한국 시청자들에게 소개하겠다는 목표가 제작진에게 있었다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더없이 성공적인 결과물이다. 배경 지역만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디테일한 설정과 정서까지 더했다. 하지만 외국 드라마 리메이크 모범 사례로 보긴 어렵다. 더 걸렀으면 좋을 장면과 더 낫게 만들 여지가 곳곳에 남았다. 원작과 한국 드라마의 매력, 원작과 한국 드라마의 단점이 골고루 섞여 원작의 매력이 크다고도, 리메이크를 잘했다고도 보기 어렵다. ‘오징어 게임’처럼 국내 시청자보다 해외 시청자들에게 더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크다.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 톤이 통일되지 않아 주고받는 장면이 어색하고 각자 연기를 보여주는 데 그친다. 그중에서도 배우 박해수는 뛰어난 연기로 등장할 때마다 긴장감을 일으키고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준범 기자)
예고편을 보고 우려한 건 사실이다. 뻔하디 뻔한 한국 영화 감성이 원작에 덕지덕지 묻은 인상이 강했다. 1회는 선입견대로 흘러간다. 예상을 깨는 건 2회부터다. 공동경제구역에 위치한 조폐국을 터는 강도와 인질, 사태를 진압하려는 경찰 모두 남북한 사람들이다. 원작 속 이야기 구조에 분단국가 현실은 새로운 변수로 작용한다. 한국판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이 리메이크여도 뻔하지 않고 독립적인 작품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전형적인 한국형 범죄물처럼 흘러가는 초반 전개는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다만 후반으로 갈수록 캐릭터 플레이와 심리전, 적절한 반전이 어우러져 눈 뗄 수 없는 재미를 준다. 배우 박해수는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준다. 등장만으로도 극의 긴장감을 좌우한다. 김윤진 역시 뛰어나다. 심리전 사이 로맨스를 튀지 않게 연기해내는 힘이 있다. 분량은 다소 길게 느껴진다. 미드 폼 드라마가 인기인 요즘 시대에 70분짜리 드라마 6회 차를 보는 건 어느 정도 각오가 필요하다. 하지만 극을 볼수록 부담과 압박보단 몰입감과 흥미가 더욱 커진다. (김예슬 기자)
“선수입장 그런 대사 없어요”라는 배우 김지훈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선수입장’이라는 대사가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선수입장 감성’이라고 부를 만한, 한국 범죄 영화의 흔한 연출은 나온다. 경우에 따라서는 작품 초반에 나오는 문제의 연출에 일찍부터 고개를 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의 매력을 속단할 수는 없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재미가 붙는 작품이다. 클리셰에 냉정한 한국 시청자보다는 해외 시청자들이 더욱 좋아할 공산이 높다. 배우들 연기는 들쭉날쭉하다. 전종서는 야성미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배우들과도 좋은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 박해수는 살벌하고 김윤진은 카리스마가 넘친다. 반면 덴버 역의 김지훈은 과한 느낌을 준다. 장윤주가 연기한 나이로비도 원작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잃었다. 예고편에 등장해 많은 이를 경악하게 한 대사(“오빠, 쓸데없는 짓하다가 대가리에 빵꾸나”)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은호 기자)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 계속 볼까 말까?
일단 보자. 오락거리로는 나쁘지 않다. 초반 연출이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주인공 일당이 일단 조폐국으로 입성하고 난 뒤엔 사건이 흥미진진하게 흐른다. 뻔뻔하고 야비한 조영민(박명훈)이 감정을 즉시 자극해 시청자를 빠르게 몰입시킨다면, 사건이 진행될수록 미묘하게 흐르는 교수(유지태)-도쿄(전종서), 선우진(김윤진)-교수의 관계는 꾸준히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시청자를 붙든다. 스페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지만, 한국 오리지널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각색이 잘 됐다. 남과 북이 공동경제구역을 만들고, 이를 통해 한 몫 단단히 챙기려는 이들이 들러붙는다는 설정은 남북 정치 상황과 어우러져 설득력을 얻는다. 남과 북의 경제 교류가 계급 갈등을 심화한다는 전제 또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벌어진 계급 격차를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은호 기자)
한국형 범죄물을 좋아하면 일단 보자. 흥미롭게 볼 부분이 많다. 원작이 가진 이야기의 힘이 뛰어나다. 여기에, 남북한의 미묘한 신경전부터 경찰과 교수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극에 재미를 더한다. 관점에 따라 새로운 볼거리가 생긴다. 경찰의 편을 들다가도 강도들에게 연민이 드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하회탈과 사자탈 등 한국적인 요소들도 눈에 띈다. K감성이 전 세계에 통하는 요즘 시대,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글로벌 시청자들이 열광할 요소가 빼곡한 작품이다. 국내 시청자들은 작품이 담고 있는 남북간 미묘한 정서를 흥미롭게 볼 만하다. 실제 공동경제구역이 생긴다면 어떨지 상상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범죄물, 심리전, 반전, 액션 등을 좋아한다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괜찮은 선택지다. (김예슬 기자)
웬만하면 그만 보자. 흥미로운 설정이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것, 인정한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도 사건과 인물들의 매력이 재미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문제는 드라마의 분량을 어떤 이야기로 채우느냐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천재적이고 치밀한 계획으로 말끔히 큰돈을 털어가는 케이퍼 장르처럼 보이지만, 정작 본 내용은 실수를 연발하고 수습하지 못해 허둥지둥하는 강도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원작이 그랬듯 한국판 역시 하나의 사건이 겨우 수습되면 다른 새로운 실수와 변수가 위기로 이야기를 이어가기에 급급하다. 인질범에 동조되는 스톡홀름증후군에 빠질 생각이 없는 시청자, 능력이 부족한데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범죄를 벌이는 강도들을 응원할 생각이 없는 시청자에겐 재미보다 답답함이 더 클 드라마다. 일하기도 바쁜 상황에 굳이 로맨스를, 그것도 수위가 높은 장면을 넣는 것 역시 불필요하다. (이준범 기자)
이준범 이은호 김예슬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