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인 직장 상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여자. 지난달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 속 윤미선(이주빈)은 설정만 보면 마음 주기 힘든 인물이다. 사람에게 배신당한 뒤에도 다른 누군가에 의지하고, 밀애의 쓴맛을 알고서도 다시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흡사 불나방 같기도 하다.
이런 윤미선이 시청자의 연민을 얻은 데는 배우 이주빈의 공이 컸다. 광고 모델로 데뷔해 2017년 SBS 드라마 ‘귓속말’을 시작으로 연기에 발을 들인 그는 떠오르는 ‘다작 배우’다. 지난 5년 간 출연한 드라마가 15편이나 된다. 쉴 틈 없이 연기하는 그에게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 속 윤미선은 간절한 인물이었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이주빈은 “윤미선을 무척 연기하고 싶었다. 감독님이 내 절실한 눈빛을 알아보신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북한 출신으로 남북 공동경제구역 조폐국에서 일하는 윤미선을 이주빈은 “곱게 자란 수동적인 인물”로 봤다. “북한 주민이 조폐국에서 일하려면 학력이 높을 거라 생각했어요. 부모님도 고위직에 보수적일 것 같았고요. 아마 미선은 원하는 연애를 해보지 못했을 거예요. 남자를 연애 상대가 아닌 보호자로 여겼을 테고요.” 윤미선과 불륜을 저지르는 조영민(박명훈)은 이기적이고 야비한 인물이다. 이주빈은 “미선은 ‘이 사람 안 될 것 같은데’ 하면서도 자신을 책임질 거라고 생각해 영민을 만났을 것”이라면서 “박명훈 선배님이 반응을 잘해주셔서 연기하기 수월했다”고 돌아봤다.
“원작 버전 미선(모니카)은 연약하고 사랑스러웠요. 하지만 저는 미선의 결단력과 강단을 더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선은 겁 많고 예민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자기 감정에 솔직하거든요. 두뇌 회전도 빠르고요. 미선이 덴버(김지훈)에게 총을 쏴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임신했으니 살려달라고 거짓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잖아요. 덴버가 총을 쏘지 못하리라는 걸 눈치 챈 뒤엔 베를린(박해수)을 속이려 허벅지에 총을 쏘라고도 하고요. 생존력 강한 인물이죠.”
이주빈은 미선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꼈다. 특히 “고민과 걱정을 많이 하다가도, 막상 결정할 때는 충동적”인 면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주빈은 “마음 가는대로 저지르는 성격” 때문에 삶이 뒤바뀌었다. 배우를 꿈꾸며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던 2011년, 미국으로 유학 갈 기회가 주어졌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보라’는 조언이 마음을 흔들었다. 비자 신청 등 유학을 준비하던 이주빈을 충동이 붙들었다. “도망가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일단 부딪쳐보자’며 유학 준비를 관두고 한국에 머무르기로 했어요.”
그렇게 만난 캐릭터가 드라마 ‘귓속말’ 속 비서다. 주어진 대사는 고작해야 몇 줄이었지만, 이주빈은 호기심과 설렘을 원동력 삼아 달렸다. 그는 “상상을 펼쳐 다른 사람이 되는 점이 연기의 매력”이라고 했다. 이주빈은 지칠 줄을 모른다. 현재 방영 중인 MBC ‘닥터로이어’에서 유능한 연구원 임유나를 연기하고 있고, 이후엔 넷플릭스 오리지널 ‘연애대전’과 tvN 새 미니시리즈 ‘월수금화목토’에도 출연한다. 공개 시기가 결정되지 않은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2’에서도 그를 만나볼 수 있다.
“파트2에서도 미선은 많은 고민 속에 갈팡질팡할 거예요. 그러다가 한 번씩은 마음 가는 대로 저질러 버릴 거고요. 지금은 미선이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지만, 결국엔 자기 자신에게 기댈 거라고 믿어요.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볼 줄 알면 미선에게도 그런 힘이 생길 거예요. 미선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기를,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기를 바라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